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이 미군 장갑차에 의한 여중생 사망사건에 대해 사과한 것은 확산되고 있는 반미사태를 수습할 가능성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좀 더 빨랐더라면 하는 아쉬움은 있지만 부시 대통령이 가해 미군에 대한 무죄 평결 이후 거세진 한국민의 분노를 제대로 인식하고 있는 것 같아 다행이라고 할 수 있다. 미국 대통령이 주한 미군 관련 사고에 대해 처음으로 사과했다는 점도 평가할 만하다.
이제는 한미 양국 정부가 갈등을 신속하게 해소하고 다시는 비극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지혜를 모아야 할 때다. 재발방지를 위해 한국 정부와 긴밀히 협력하겠다는 미국 정부의 약속을 재확인한 부시 대통령의 다짐이 단순한 수사로 끝나서는 안 된다. 재발방지 대책 논의에는 우리측에 불리한 한미주둔군지위협정(SOFA) 개정 문제도 고려되어야 한다.
미국측은 주한 미대사, 주한 미군사령관과 참모장, 그리고 콜린 파월 미 국무장관까지 나서 여중생 사망에 대해 사과했으나 한국민의 분노를 막지 못한 이유를 잘 헤아려야 한다. 이번 사건뿐만 아니라 주한 미군이 관련된 다른 불상사가 누적돼 한국민의 불신을 초래했다는 사실 또한 인식하고 발상의 전환을 해야 한다.
한국 정부도 할 일이 많다. 특히 부시 대통령의 사과를 받아낸 것은 정부가 아니라 여론의 힘이었음을 절감하고 부끄러워해야 한다. 부시 대통령의 사과를 행동으로 구체화시키는 것은 정부의 책임이다. 뒤늦게라도 정부가 제대로 움직이는지 국민은 주시할 것이다.
아울러 시위대는 자제해야 한다. 미군부대 진입 등 법에 어긋나는 과격행동은 사태 해결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자칫하면 누구도 원하지 않는 더 큰 불행을 초래할 수도 있다. 이제는 분노표시보다는 미국이 실제로 변하는지 감시하는 것이 필요하다.
한미관계는 이번 사태로 적지 않은 상처를 입었다. 부시 대통령의 결단을 계기로 양국 관계가 비 온 뒤에 땅이 굳어지듯 더욱 긴밀해지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