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감독으로 생각하지마
이 감독이 코리아텐더와 인연을 맺은 것은 2001년 6월1일. 86년 실업팀 삼성전자에 입단했을 당시 주장이었던 진효준 전 감독이 코치로 부른 것.
이 감독은 지도자가 되기 전까지 삼성전자 세일즈맨과 프로농구 삼성 썬더스 프런트로 일한 이색 경력의 소유자. 성균관대 출신으로는 박광호 전 국민은행 여자팀 감독에 이어 두 번째로 실업팀(삼성전자)에 입단했을 만큼 농구실력은 괜찮았지만 상무시절 무릎 연골이 파열되는 바람에 농구를 중도포기했다.
이 감독은 선수들에게 결코 권위를 내세우지 않는다. 지도자로서는 내세울 만한 경력이 없어 팀 전술의 대부분이 전임 감독의 작품임을 숨기지도 않는다.
정작 그의 장점은 선수들의 감춰진 소질을 살려주는 섬세함과 자율농구. 훈련 전에 선수들이 감독을 찾아와 컨디션이 안 좋으니 훈련을 빼 달라고 요구하고 연습에 지장을 주지 않아야 한다는 단서가 붙기는 하지만 선수들에게 술과 담배를 허용하는 것은 다른 팀에서는 볼 수 없는 현상이다.
비싸게 팔릴 수 있도록 열심히 하자
이 감독은 월봉을 받는다. 다른 기업에서 인수할 때 부담을 느끼지 않도록 하자는 구단측의 배려에서다.
고액 연봉자가 수두룩한 프로농구판이지만 코리아텐더 선수 가운데 억대 연봉을 받는 선수는 한 명도 없다. 인수 기업이 나서지 않아 구단이 해체되면 다른 구단에 갈 실력이 있는 선수는 몇 명 안된다. 코리아텐더는 또 10개 구단 중 유일하게 전용체육관이 없어 매일 연습장소를 걱정해야 한다. 오죽했으면 에릭 이버츠와 안드레 페리가 시즌을 앞두고 입국한 뒤 우리 팀은 절대 6강에 못 간다고 단언했을까.
그러나 억대 연봉과 전용체육관이 없어도 코리아텐더는 해냈다. 벼랑 끝에 몰린 지도자와 선수들의 투혼은 무서웠다. 시즌 개막 전 연습경기에서 10승2패를 할 때가지만 해도 다른 사람들은 찻잔 속의 태풍이라고 했지만 이젠 아무도 진짜 태풍임을 부인하지 않는다.
헝그리 투혼이 아니라 실력입니다
연봉 9500만원의 정낙영이 연봉 2억2000만원짜리 김영만(SK 나이츠)을 무득점에 묶고 연봉 8800만원의 황진원이 경기당 20점 이상을 넣는다. 그러다 보니 다른 선수들도 자신감을 갖지 않을 수 없다.
비결은 피눈물 나는 연습. 비록 남의 체육관을 빌어 쓰는 눈치훈련이었지만 선수들은 나름대로 충실한 연습량을 쌓았다. 체육관 빌리기가 여의치 않으면 숙소 근처 산을 뛰며 체력을 키운 코리아텐더 선수들이다. 이 감독은 손으로 하는 운동에 의외는 없다. 다 연습한 만큼 나오게 마련이라고 말했다. 헝그리 투혼도 한 두 번, 선수들은 이제 자신들의 놀라운 전과가 진정한 실력이라고 믿고 있다.
김상호 hyangsa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