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냈다.
마지막 선수의 레이스가 끝난 뒤까지 자신의 이름이 전광판 꼭대기에 있자 이규혁(25춘천시청)은 빙판 위에서 미친 듯이 태극기를 흔들었다. 아시아경기 첫 금메달도 기뻤다. 그러나 그보다는 우승으로 군 복무가 면제돼 스케이팅을 계속할 수 있다는 기쁨이 더욱 컸다. 국군체육부대에 빙상종목이 없어 군에 입대하면 당장 운동을 그만둬야 할 절박한 처지였기 때문이다.
3일 일본 아오모리현 하치노헤시 나가네공원빙상장에서 열린 제5회 동계아시아경기대회 스피드스케이팅 남자 1500m 결승. 한국의 간판 이규혁은 4번째 주자로 레이스를 펼쳐 1분54초65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문 준(한국체대1분54초89)과 여상엽(강원체고1분55초69)도 나란히 2, 3위에 올라 한국은 1500m에 걸린 금 은 동메달을 휩쓸었고 최재봉(단국대1분56초22)도 4위를 차지했다. 이 종목 한국 최고기록은 이규혁이 2년 전 캘거리(캐나다)에서 세운 1분45초20.
이규혁은 고교 1학년때 1000m 세계기록을 세우는 등 아시아 최강으로 군림해온 스타. 그러나 정작 아시아경기대회에서는 2번 출전해 노골드에 그쳤다.
이번 대회는 나이 때문에 사실상 병역면제 혜택을 받을 수 있는 마지막 기회. 주종목인 1000m에 집중하기 위해 1500m를 포기할까 생각도 했었다.
이날은 웬 일인지 바람이 거의 불지 않았다. 감도 좋았다. 피니시라인을 통과하는 순간 스케이트가 삐긋해 미끄러지며 넘어진 것이 마음에 걸렸다. 0.01초가 아쉬운데. 게다가 후배 문준(21고려대)이 랩타임에서 자신의 기록에 근접하자 가슴은 새까맣게 타들어갔다.
이규혁은 무엇보다 2006토리노동계올림픽까지 스케이팅에 전념할 수 있게 돼 기쁘다. 홀가분한 마음으로 5일 주종목인 1000m에 출전해 2관왕에 도전하겠다고 말했다.
피겨스케이팅 심판으로 이번대회에 온 어머니 이인숙씨(생체협스케이팅연합회 회장)와 피겨 남자 싱글에 참가한 동생 이규현(23고려대)도 이규혁의 우승 소식을 듣고 뛸 듯이 기뻐했다.
양종구 yjong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