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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격태격 사랑만들기

Posted February. 13, 2003 2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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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렌타인 데이에 초콜릿을 가장 많이 받을 것 같은 남자 배우를 고른다면?

단연 휴 그랜트다. 가볍고 무책임해도 미워할 수 없는 바람둥이의 이미지는 그의 새 영화 투 윅스 노티스에서도 여전하다.

왜 변호사를 개인비서처럼 부려 먹느냐는 루시(샌드라 불럭)의 항의에 그는 나도 힘들어. 네가 온 다음에는 뭐든지 너한테 물어봐야 안심이 된단 말야하고 엉뚱하게 책임을 떠넘긴다.

루시의 어머니가 지나친 치부도 죄악예요. 댁은 그러고도 잠이 오우?하고 면박을 줘도 아, 저는 파도소리를 틀어놓고 자는데요하고 딴청을 피운다.

심각하고 불편한 상황을 미꾸라지처럼 빠져나가고 잔주름이 물결처럼 퍼져나가는 미소로 무거운 근심을 날려버리지만, 그렇다고 아무 생각이 없는 건 아니다. 루시의 이념적 동지인 애인보다 훨씬 더 그녀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잘 놀아주며, 그녀가 싫어하는 근대를 모두 자기 접시로 옮기는 자상함도 지니고 있다.

로맨틱 코미디의 왕 휴 그랜트를 서면으로 인터뷰했다.

또 로맨틱 코미디다. 지겹지 않은가?

내가 로맨틱 코미디를 선호하는 것처럼 보이는 모양인데, 나는 아마 지구상에서 로맨틱 코미디 대본을 가장 많이 거절한 사람일 거다. 투 윅스 노티스의 대본도 기대없이 읽었는데 정말 끌렸다. 런던의 친구에게 대본을 보내주고 내가 미쳤거나 술이나 마약에 취한 것일지도 모르는데, 너도 나처럼 이 이야기가 재미있다고 생각하니?하고 물었다. 며칠 뒤에 친구가 너 멀쩡해. 정말 재미있어하고 대답해주더라.

투 윅스 노티스의 어떤 점이 마음에 들었나?

이 영화는 스펜서 트레이시와 캐서린 햅번이 주로 연기했던 과거의 로맨틱 코미디에 대한 일종의 오마쥬(헌사)다. 성격이 극단적으로 대비되는 주인공들이 항상 다투면서도 사랑에 빠지는 그런 영화들 말이다. 투 윅스 노티스는 시대에 뒤떨어지지 않으면서도 로맨틱 코미디의 황금기를 되돌아보는 영화다.

샌드라 불럭과 함께 연기하는 촬영 현장은 어땠나?

나는 촬영 현장에서 까다롭기로 악명이 높다. 1989년 이래로 현장을 즐겨본 적이 없는데, 이번엔 달랐다. 샌드라 불럭은 함께 일해본 여배우들 가운데 최고로 웃긴다. 좀 유치한 유머 감각이 나랑 비슷하다. 한 장면 촬영이 끝나 카메라가 꺼져도 우리들끼리는 코믹한 연기를 계속하는 바람에 스태프들을 기절시킨 경우가 많았다.

로맨틱 코미디의 왕으로 수년간 군림할 수 있는 비결이 뭔가?

글쎄.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모르겠네. 이 영화의 주인공이 나는 그저 매력적인 원숭이에 불과하다고 말하는 장면이 있는데 나도 그런 것 같다. 어떤 면에서는 그게 내 비극인 거지.



김희경 susann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