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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린치 일병 구하기

Posted April. 03, 2003 2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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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3월 미국 빌 클린턴 대통령은 국방장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연합군사령관과 전화를 주고받으며 보스니아에서 추락한 미군 스텔스기 조종사를 구출하는 작전을 백악관에서 직접 지휘했다. 스텔스기가 추락할 때 낙하산으로 탈출한 조종사는 중무장한 유고군이 득실거리는 숲 속에서 전파신호를 보내 헬기에 의해 건강한 모습으로 구조됐다. 미국인들에게 큰 감동을 준 이 이야기는 3년 뒤 비하인드 에너미 라인스(적진 한가운데)라는 영화로 만들어져 911테러로 애국심이 고조된 사회 분위기에 맞추어 개봉됐다.

전쟁은 영화의 단골 소재이다. 총탄이 쏟아지고 포연이 자욱한 속에서 전쟁영웅이 탄생하고 간호사와 부상병 사이에 로맨스가 꽃핀다. 스티븐 스필버그가 감독한 라이언 일병 구하기는 1944년 프랑스 전선에서 행방불명된 일등병을 구하는 이야기다. 아들 네 명을 전쟁터에 보내 셋이 죽은 어머니의 남은 아들 한 명을 찾아 고향으로 보내기 위해 여덟 명의 특수부대원들이 독일군과 치열한 전투를 치르며 라이언 일병을 찾아냈으나 그는 고향으로 돌아가기를 거부하고 전쟁터에 남는다. 할리우드가 싸구려 감상주의라는 비평을 들으면서도 이런 유의 영화를 즐겨 찍는 것은 미국인의 정서에 들어맞아 흥행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이라크전쟁에서 영화보다 더 극적인 구출작전이 성공했다. 나시리야 부근에서 길을 잃고 헤매다가 이라크군의 공격을 받고 포로가 된 제시카 린치 일병은 미 중앙정보국(CIA)의 지원을 받은 특수부대원들의 전광석화와 같은 작전에 의해 구출됐다. 미군 사령부는 애티가 나는 19세 여군의 소식을 잽싸게 매스컴에 알려 전쟁영웅을 갈망하는 미국인들의 정서를 한껏 충족시켰다. 미군은 한밤중 작전을 벌이는 경황에서 구출작전 장면을 촬영해두었다가 텔레비전에 공개했다. 비록 일부만 공개됐지만 라이언 일병 구하기보다 더 많은 관객을 끌어보려는 선전전을 고려한 것이다.

미국은 북한과 지루한 협상을 벌여 1990년대 초 625전쟁에서 숨진 미군 유해 208구를 돌려받고 그 대가로 현금 200만달러를 치렀다. 1997년에는 미군 350명이 사망한 평북 운산군에서 실종자 가족을 참관시킨 가운데 유해발굴 작업을 벌였다. 한 병사의 목숨과 주검을 소중히 여기는 나라의 군대에서 젊은 병사들은 목숨을 내놓고 국가를 위해 싸우게 된다. 미군은 전쟁 영웅을 적진에 결코 방치하지 않는다는 주제가 할리우드에서 꾸며낸 가공의 시나리오가 아님을 이라크전쟁에서도 확인해주었다.

황 호 택논설위원



hthwa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