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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제2건국위

Posted April. 25, 2003 2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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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의 건국 범국민추진위원회 인터넷 홈페이지의 만화가 고소를 자아낸다. 나, 상임위원장입니다. 맞을 준비가 됐습니다 제2건국이라니 제3건국도 있습니까. 정권 바뀔 때마다 하나씩 만드는 관변단체 아닙니까 저희는 민간이 주도하고 관이 지원하는 단체입니다 도대체 그동안 한 일이 뭡니까. 상임위원장은 문답이 진행되는 동안 시종 주먹으로 얻어터진다. 그가 주저앉아 신음하다가 온몸에 붕대를 감고 병원에 실려 가는 장면으로 만화는 끝을 맺는다. 해체위기에 직면한 제2건국위의 어설픈 역정과 예정된 운명을 그대로 축약하고 있어 흥미롭다.

관이 제창한 운동을 추진하기 위한 단체의 부침만큼 권력무상을 실감케하는 것도 없다. 김영삼 정권 때의 세계화추진위원회의 경우도 돌아보면 참 허망하다. 1994년 말 호주로 향하는 대통령 특별기 안에서 YS가 참모들에게 내일 아침 기자간담회에서 뭘 말하면 좋겠노라고 묻는 과정에서 느닷없이 등장한 게 세계화라는 막연한 개념이었다. 여기에 살을 붙이고 그럴듯하게 포장을 하느라 각 부처가 요란을 떤 것은 불문가지. 그렇게 급조된 세계화추진위는 그래도 사법개혁 추진과 같은 꽤 뚜렷한 족적을 남겼지만, 정권교체와 함께 어김없이 명을 다했다.

박정희 정권 때 농촌재건운동으로 시작한 새마을운동만은 30여년 동안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아직도 새마을운동중앙회는 정부지원을 받고 관공서엔 새마을기가 걸린 곳이 많다. 전국적인 네트워크를 형성한 게 질긴 생명력의 요인으로 꼽힌다. 정부수립 50주년인 98년 광복절에 김대중 대통령이 제안한 제2건국운동도 새마을운동을 모델로 한 것이었다. 당초엔 세계화추진위 같은 자문기구를 구상했다가 전국적인 국민운동조직으로 발전시키려 한 게 제2건국위 비운의 시작이었다. 출범 전부터 야당의 거센 반발과 여론의 호된 비판을 받은 제2건국위는 그 후 이도저도 아닌 상태로 4년반을 소일했다. 한때는 제2건국위 위원도 관과 줄이 닿는다 해서 지방에선 자리다툼도 볼 만했지만.

새마을운동이 한창이던 때가 운동권학생들의 농촌봉사활동(농활)도 가장 활발한 시기였다. 노무현 정권의 개혁 핵심세력인 70, 80년대 운동권출신도 그 세대다. 또한 국제화와 세계화를 구별하고자 했던 YS정권은 바로 세계화의 파도를 타고 몰아닥친 환란() 속에 저물었다. 그리고 DJ가 제시한 제2건국운동의 3대 방향 중 첫째가 참여였으나, 참여정부를 표방한 노 대통령은 제2건국운동을 실패한 운동으로 규정했다. 5년 뒤엔 또 어떤 역사의 아이러니가 기다리고 있을지.

임 채 청 논설위원 ccl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