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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부사' 박지은 4m 챔프퍼팅

Posted May. 05, 2003 2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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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 졸였던 명승부였다.

5일 미국 버지니아주 윌리엄스버그 킹스밀GC(파716285야드)에서 벌어진 미국LPGA투어 올 창설대회인 미켈럽라이트오픈(총상금 160만달러) 최종 4라운드.

1타차의 단독선두로 출발한 박지은은 시즌 첫 우승에 대한 부담 때문인지 1번홀부터 티샷을 물에 빠뜨려 더블보기를 범한 뒤 2번홀에서 보기, 4번홀에서 또 다시 보기를 범했다. 우승 문턱에서 주저앉았던 올 시즌 개막전 웰치스프라이스챔피언십 최종 라운드를 연상케 한 분위기.

5번홀부터 파죽의 3연속 버디를 낚으며 페이스를 회복했지만 챔피언조로 맞대결을 벌인 크리스티 커(미국)는 7번홀(파5)에서 이글을 낚아 단숨에 2타차로 달아났다. 이후 13번홀까지는 두 선수가 각각 보기 1개씩을 기록하며 소강상태.

커가 14번홀(파4)에서 버디를 낚아 3타차로 간격을 벌릴 때만 해도 박지은의 시즌 첫 우승은 사실상 물 건너 간 듯해 보였다.

그러나 이 모두는 명승부를 위한 전주곡이었을 뿐. 진짜 승부는 마지막 4개홀 집중력 싸움으로 판가름났다. 커가 두 번째 샷을 숲 속으로 날려 보기를 범한 15번홀(파5)에서 박지은은 버디를 낚아 1타차로 바짝 추격했다.

이날의 하이라이트는 16번홀(파4). 박지은은 티샷이 페어웨이 오른쪽 나무에 맞고 튀어 깊은 러프에 빠진 위기상황에서 7번 아이언으로 홀컵 5m 지점에 투온시킨 뒤 짜릿한 버디로 연결했다.

반면 이미 직전 홀에서 집중력이 흐트러진 커의 두 번째 샷은 어이없이 그린 오른쪽을 벗어났고 3온2퍼팅으로 연속 보기를 범하고 말았다. 1타차의 재역전에 성공한 박지은은 까다로운 마지막 파3홀인 17번홀을 무난히 파세이브했다.

마지막 고비는 최종 18번홀(파4). 박지은의 티샷이 오른쪽으로 밀리면서 깊은 러프에 빠졌고 두 번째 샷마저 그린 왼쪽을 넘어 러프에 빠진 것. 캐리 웹(호주)과 로레나 오초아(멕시코)가 합계 8언더파로 먼저 경기를 마쳐 만약 보기를 범한다면 4명이 연장승부를 펼쳐야 하는 어려운 상황.

그러나 박지은이 누군가. 미국 주니어와 아마추어 무대에서 60승을 거두는 동안 최종 라운드를 선두로 출발한 대회에서 한 번도 역전패한 적이 없을 만큼 두둑한 배짱과 뒷심을 지닌 선수다. 결코 만만찮은 거리인 4m짜리 파퍼팅은 거침없이 그린을 타고 흘러 홀컵에 빨려 들어갔다.

지난해 7월 맥 말론(캐나디안오픈) 이후 10개월 만에 미국 선수의 우승을 기원했던 많은 미국 골프팬, 그리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 18번홀 그린을 떠나지 못한 웹과 오초아의 한 가닥 희망까지 날려버린 파퍼팅이었다.



안영식 ysah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