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유학까지 다녀온 음악가이자 전직 대학 시간강사가 빚 때문에 독극물 협박 범행을 했다가 경찰에 붙잡혔다.
서울 남대문경찰서 28일 서울의 한 음료회사에 전화를 걸어 2억원을 내놓지 않으면 당신 회사에서 판매하는 음료에 독극물을 넣어 유통시키겠다. 돈이 든 현금카드와 비밀번호를 지정한 장소에 갖다놓으라고 협박한 혐의(공갈미수)로 김모씨(38)에 대해 30일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1995년부터 2000년까지 이탈리아에서 성악을 공부한 김씨는 2000년 귀국해 2001년부터 모교인 지방의 K대에서 시간강사를 맡았다. 지난해에는 각종 오페라 무대에서 주연을 맡을 정도로 실력을 인정받는 테너였다.
그의 인생이 흔들리기 시작한 것은 귀국 직후 아버지가 사업에 실패한 뒤 병으로 사망하면서부터. 어머니가 친척집에 거주해야 할 만큼 가세가 기울었으나 시간강사로 일하는 그의 수입은 한 달에 40여만원의 강사료와 약간의 개인 성악 레슨비가 전부였다.
성악가였던 아내 역시 대학 시간강사로 일하면서 돈을 보탰으나 넉넉한 생활에 익숙해 있던 김씨는 씀씀이를 줄이기가 쉽지 않았다.
그는 결국 동료 강사와 친구들에게 돈을 빌리기 시작했다. K대 음대 A교수가 자신의 삼촌임을 내세워 내가 곧 정식 교수가 될 테니 그때 갚겠다고 둘러댔다. 한 후배에게는 삼촌에게 말해 정식 교수로 만들어주겠다며 10여차례에 걸쳐 모두 6000만원을 받아 챙겼다.
삼촌인 A교수를 비롯해 아내의 친정까지 보증을 세워 은행에서 1억여원을 빌리기도 했다. 결국 지난해 아내는 여섯 살짜리 딸을 데리고 빚더미에 올라앉은 그를 떠났다.
대학측은 지난해 12월 금전 문제로 평판이 좋지 않은 김씨에게 더 이상 강의를 맡기지 않았다.
이후 매일 빚 독촉에 시달리던 그는 최근 월세로 살고 있던 아파트에서 나가 달라는 이야기를 듣게 되자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범행을 계획했다.
김씨는 경찰에서 실제로 독극물을 넣을 생각은 전혀 없었고 돈에 쫓겨 내가 잠시 정신이 나갔던 것 같다고 고개를 떨궜다.
전지원 podrag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