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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북한 어린이와 여성의 함정

Posted September. 14, 2003 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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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미국의 원로 언론인이 북한을 방문했을 때 초등학교 교실을 보여 달라고 요청했다고 한다. 이 요청이 받아들여져서 교장, 통역원과 함께 한 교실에 들어섰는데 수십 명의 학생들이 한결같이 노트에 무언가를 열심히 쓰고 있을 뿐 한 학생도 누가 들어왔는지 고개를 들어 쳐다보지 않았다고 한다. 아마도 방문객에게 학습에 몰두해 있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는 지시를 받아서였겠지만 고작 아홉 살 정도의 아이들이 그렇게 호기심을 누를 수 있다는 게 기이하게(weird) 느껴졌다고 그 언론인은 말했다.

가끔 TV에서 접하게 되는 북한의 모습을 보면 북한에서는 네다섯 살밖에 안 된 유치원 어린이들도 배우처럼 화장을 하고 마이크를 갖다대면 미 제국주의 놈들을 박살내겠다 우리는 영명한 지도자 동지를 모시고 지상낙원에 살고 있다라는 말들을 거침없이 내뱉곤 한다. 반면 몇 년 전에 교예단을 따라와서 노래 부른 어린이들의 애교는 간드러지다 못해 소름끼치는 것이었다. 이 주체사회의 어린이들은 스스로 주체성을 형성해 가지 못하고 서커스의 동물처럼 사육사의 명령에 따라 주체성을 발휘하는 게 아닐까.

지난해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미녀응원단 파견은 대성공이었지만 미녀들의 화장이 너무 짙어서 부자연스럽다는 일부 남한 사람들의 견해를 감안해서인지 올해는 대학생으로 구성된 화장기 적은 300명의 신선한 미녀들이 파견되었다. 대다수 남한 남성들은 미모를 기준으로 특수집단을 선발하는 것이 얼마나 비민주적이고 비인간적인 일인지, 그 미녀들이 어떤 사명을 부여받고 파견되었는지 그런 생각은 해보지도 않고 그저 그들의 미모에만 열광했는데, 올해에는 장군님의 사진이 비를 맞으시는 데 대한 미녀들의 눈물어린 항의로 그들에 대한 환상이 상당히 깨졌던 것 같다.

여성의 미모는 경쟁력일 수도 있지만 편견과 불이익의 원인일 수도 있고, 가혹한 약점이 될 수도 있다. 여성이 자율적으로 자신의 삶을 경영할 수 없는 독재체제하의 억압사회에서는 몇 배 더 그럴 것이다. 미모가 단순한 심리적인 이점이 되는 이상으로 제도적 특권집단의 가입 자격이 되는 사회는 철저한 불평등사회이고, 그런 사회에서 미모는 역으로 무서운 재앙이 될 수도 있다. 한 응원단원의 빨리 장군님의 품 안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말은 그래서 너무나 불길한 느낌을 준다. 행여 그 여성의 그리움이 장군님에게 전해져서 장군님의 각별한 보답이 있지는 않았을까? 모쪼록 그런 일은 없었기 바란다.

서 지 문 객원논설위원고려대 교수

jimoon@korea.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