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4월 11일 일본 유력 신문의 편집국 간부회의를 참관할 기회가 있었다. 회의 말미에 양국 현안에 관해 의견을 나누다 자연스럽게 다음 날 열리는 일본 자민당 총재후보 4인의 공동기자회견으로 대화가 이어졌다. 자민당 총재 선거는 사실상 일본 총리 선거나 마찬가지기 때문에 곧바로 누가 총리가 될 것으로 예상하느냐는 질문을 던졌다. 무엇보다 당시 일부 외신이 언급한 선거혁명 가능성이 근거 있는 예상인지 알고 싶었다. 편집국장의 권유로 답변에 나선 정치부장은 단호했다. 그런 일은 결코 없을 것입니다. 자민당 최대 파벌을 이끌고 있는 하시모토 류타로 후보가 이길 것입니다. 일본 정치는 파벌에 의해 좌우됩니다.
그러나 그로부터 13일이 지나 실시된 선거에서 이긴 사람은 하시모토가 아니라 탈()파벌을 선언한 고이즈미 준이치로 후보였다. 동업자로서 선거결과를 보고 놀랐을 그 신문사 간부들의 심경을 헤아리며 선거보도의 어려움을 새삼 절감했다. 일본 언론은 파벌정치라는 뿌리 깊은 타성에 젖어 정치권 풍향과 유권자의 표심을 제대로 읽지 못했다. 하긴 지난해 대선 때 많은 한국 언론인들도 빗나간 예측 때문에 당황했던 경험이 있으니 틀린 선거 전망이 일본 언론인만의 망신은 아니다. 선거 혁명으로 총리가 된 고이즈미가 지난 주말 압도적인 지지로 재선에 성공했다. 어느덧 장기집권의 탄탄대로에 들어선 느낌이다.
우리도 일본 총리의 재선을 눈여겨보아야 한다. 특히 그가 추진할 대미, 대한반도 정책이 관심사다. 고이즈미 총리는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과 백악관에서 정상회담을 마친 뒤 기자회견을 하면서 굳이 영어로 환상적인 회담(fantastic meeting)이었다고 말하는 사람이다. 그의 등장 이후 미일 관계는 눈에 띄게 좋아졌다. 고이즈미 총리는 최근 국제사회의 난제인 이라크 파병에 대해서도 일찌감치 미국 지지로 마음을 정했다. 일본 정부에서는 이라크 재건 비용 분담 의사까지 흘러나오고 있다.
지난해 북-일 정상회담을 성사시킨 고이즈미 총리가 추진할 대북 정책도 궁금하다. 북한의 과거 청산과 일본의 납치문제 해결이 팽팽히 맞서고 있지만 언제 다시 깜짝 쇼가 펼쳐질지 알 수 없다. 일본에서는 고이즈미 총리가 대통령형 총리가 되었다는 분석까지 나오고 있다고 한다. 탄탄해진 국내 기반을 바탕삼아 동아시아 외교의 큰 틀을 주도하는 주역으로 더욱 힘차게 부상할 가능성이 있는 일본 총리. 이웃나라 지도자 이상의 관심을 기울여야 할 때다.
방 형 남 논설위원 hnbha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