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병렬 한나라당 대표가 SK비자금 유입에 대해 국민에게 사과하면서 불법 정치자금의 사슬을 끊기 위한 무제한적 특검을 제의했다. 이번 기회에 망국병인 정경유착과 부패정치를 혁파해야 한다는 최 대표의 상황 인식은 옳다. 그러나 지금 이 시점에서 특검을 거론하는 것이 과연 문제 해결의 바른 순서인지는 의문이다.
본란에서 이미 지적했듯이 지금은 본격적으로 진행될 검찰 수사를 지켜보는 것이 정도다. 수사 결과가 미진하거나 형평성을 잃은 것으로 드러나면 한나라당이 특검을 하지 말자고 해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온다. 야당만 부당하게 당한다면 가만있을 국민이 어디 있겠는가.
특검 제의는 자칫 국면 호도용으로 비치기 쉽다. 여권은 벌써 SK비자금 사건에 대한 물타기라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이렇게 되면 사안의 본질인 진상 규명과 정치자금 개혁은 뒷전으로 밀리고 여야는 또다시 정치공방의 이전투구에 함몰될 가능성이 높다.
검찰이 대통령 측근인 최도술씨의 SK비자금 수수사건을 수사하자 최 대표는 뭐라고 했는가. 검찰을 치켜세우면서 안대희 대검 중수부장이 요즘 한국의 최고 실세라고까지 하지 않았던가. 최돈웅 의원 비리사건에 대해 검찰 수사가 단계적으로 완벽했다고 평가한 사람 역시 김영일 전 사무총장이었다. 그런 한나라당이 특검밖에 없다는 식으로 나오니 정략적 대응이라는 얘기가 나오는 것이다. 한나라당이 SK비자금과 함께 특검 대상으로 제시한 대통령 측근 비리도 항목이 7개나 돼 과연 특검 의지가 있는지 모르겠다는 지적이 나올 만하다.
대선자금 비리는 이번 기회에 모두 털고 가야 한다. 검찰 수사가 공정하지 못했다고 국민이 판단한다면 특검도 해야 한다. 한나라당은 과반수 의석을 가진 다수당으로 특검을 관철하는 데 큰 어려움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이 시점에서는 검찰 수사를 지켜봐야 한다. 그것이 제1당으로서의 책임 있는 자세이자 검찰 수사의 공정성을 담보하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