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 to contents

[오피니언] '실향기'

Posted October. 29, 2003 22:52   

中文

소설(Fiction)이 가상과 상상력의 산물인데 비해 논픽션(Nonfiction)은 사실()의 산물이다. 브리태니커백과사전은 논픽션을 르포르타주, 자서전, 전기, 기행문, 회고록, 일기 등 사실에 입각해 쓴 기록문학을 통틀어 일컫는 말로 정의한다. 1912년 미국 잡지 퍼블리셔즈 위클리가 베스트셀러를 발표할 때 픽션과 논픽션으로 분류하면서 이 용어가 대중화됐다. 뉴욕타임스 등 미국의 권위지들은 요즘도 이 분류에 따라 베스트셀러를 소개한다.

미국은 논픽션의 천국이다. 저널리즘 부문에서 권위를 인정받고 있는 퓰리처상에도 논픽션 부문이 있다. 현직 대통령과 성 추문을 일으킨 여성이 고백록을 출간하고, 전쟁 때 포로가 된 여군의 스토리를 입도선매하기 위해 거액을 제시하기도 한다. 전직 대통령의 가장 중요한 소일거리가 회고록을 내거나 강연을 하는 일이다. 잘한 이는 잘한 대로, 기대에 못 미친 이는 그대로 재임 중의 비망록()을 펴낸다. 언론도 비교적 후한 대접을 해 준다.

올해로 39번째를 맞는 월간 신동아 논픽션 공모에서 우즈베키스탄 타슈켄트에 살고 있는 이춘식씨의 실향기()가 최우수상을 탔다. 올해 칠순인 이씨는 625전쟁 때 입대해 국군 러시아어 통역장교로 일했고, 1963년 일본 미 태평양 정보학교 과정을 마치고 귀국하던 중 주일 소련대사관으로 망명해 타슈켄트 등에서 27년을 보내는 기구한 인생 역정을 밟았다. 1990년 비로소 고국 땅을 밟은 그는 어쩐지 내가 걸어 온 길이 조금 긴 봄 꿈만 같다. 한국에 오면 타슈켄트에 가고 싶고, 타슈켄트에서는 고향 제주가 그립다며 경계인의 고뇌를 털어 놓는다.

그의 진솔 담백한 고백 가운데는 초창기 국군 통역장교의 세계, 건설부 장관을 지낸 고재일 중령과 참모총장을 지낸 김종오 장군과의 인연, KGB 고위 장성과의 만남, 모친이 계신 북한으로의 탈출이 좌절된 사연도 있다. 그의 개인사는 험난한 우리 현대사의 또 다른 이면인 셈이다. 어찌 그 한 사람뿐이랴. 한반도에서 태어나 나름대로 치열하게 격동의 현대사를 살아온 이들이라면 누구든 그의 삶 자체가 한 편의 논픽션 드라마일 것이다. 시인 바이런은 일찌감치 사실은 언제나 소설보다 기이하다(Truth is always strange, stranger than fiction)고 간파한 바 있다. 소설보다 더 기막힌 삶을 산 이씨는 현재 타슈켄트에 진출한 국내 회사의 지사장으로 말년을 보내고 있다.

오 명 철 논설위원 osca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