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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개 떨군 도이 사민당 대표

Posted November. 10, 2003 2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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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년간 지켜온 지역구를, 그것도 자민당 후보에게 빼앗긴 게 분하고 억울합니다.

17년간 일본 사민당을 이끌어 온 여걸() 도이 다카코(74사진) 당수는 10일 효고()현에서 낙선한 직후 이런 말과 함께 고개를 떨어뜨렸다. 비례대표 후보로 당선돼 의회에는 등원할 수 있게 됐지만, 의석이 3분의 1로 줄어 존망의 기로에 선 당처럼 정치인으로서도 위기를 맞았다.

사민당의 전신인 사회당은 1958년 중의원 선거 때 전체 의석 467석 중 자민당(287석)에 이어 166석을 차지한 제1야당이었다.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를 기치로 지지를 받던 사회당은 일본 경제의 성장과 함께 의석을 상실해 오다 급기야 당수까지 낙선하는 날을 맞고 만 것이다.

고령인 도이 당수는 이번이 마지막이라며 지지를 호소했지만 일본인 납북자 가족 문제와 사회당의 친() 북한 전력을 집요하게 공략한 자민당의 공세에 무너졌다. 비서관의 급여부정 의혹도 감표 요인이 됐다.

도이 당수는 도시샤()대 강사였던 69년 중의원 선거에 당선돼 정계에 입문한 이후 11선을 기록하며 여성으로서 첫 중의원 의장을 지냈다.

평생 독신으로 스스로 평화헌법과 결혼했다고 말하기도 했다. 자민당 등 보수세력이 재무장을 염두에 둔 개헌론을 주창할 때마다 온몸으로 맞서 싸워 왔다.

그는 또 여성의 정계 진출에 크게 기여한 여성계의 대모()였다. 86년 9월 중참의원 동시 선거에서 당이 대패한 뒤 일본 최초의 여성 당수에 올랐으며 이후 처음 치른 89년 참의원 선거에서 일본정치 사상 처음으로 여소야대를 실현시키는 성공을 거두었다. 이때 사회당 출신 여성의원 22명을 배출해 이른바 마돈나 선풍을 불러일으켰다.

90년 중의원 선거에서도 사회당 의원들의 대거 당선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 96년에는 당명을 사민당으로 바꾸고 당 개혁을 추진했다. 하지만 일본사회의 강한 우경화 분위기 속에 치러진 이번 선거에서 호헌을 상징해 온 사민당은 당수 지역구 낙선이라는 참담한 패배를 맛보았다.



조헌주 hansch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