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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탄 흔적 스프레이 글씨 시민들 불안

Posted November. 21, 2003 2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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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일 오후 전북 부안군 수협 앞에는 태풍전야와 같은 고요함이 감돌았다.

며칠 전 시위가 격렬했음을 보여주듯 시내에는 차량과 타이어 등을 태운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었고, 도로와 건물 벽 곳곳에 붉은색 스프레이 등으로 핵은 죽음이라는 글씨가 쓰여 있었다.

공공건물마다 전경들이 삼엄한 경비를 서고, 주민들은 삼삼오오 모여 걱정스럽다는 표정으로 앞으로의 사태 추이에 대해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러나 날이 저물어 어둠이 깔리면서 공공건물 방화 등의 상황이 재현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에 시내 전체가 팽팽한 긴장감 속에 휩싸였다.

광주사태 방불=승객들에게 핵폐기장백지화 범부안군민대책위의 투쟁속보를 나누어주던 조모씨(51택시운전사)는 밤이 되면 시내가 광주사태를 방불케 한다며 촛불시위가 열리는 수협 근방에는 가지도 못하고 부안읍 외곽을 돌아다닌다고 말했다.

19일 서해안고속도로 점거시위에 참여했다는 조씨는 처음에는 전경들이 아들 같았는데 할아버지를 방패로 때리는 것을 보고 마음이 독해졌다며 전경이 50대 아주머니를 끌고 가는 TV방송 화면을 보고 주민들이 흥분했다고 말했다.

상설시장에서 분식집을 하는 김모씨(38여)는 위도 사람들은 빚이 많아 폐기장 건설에 찬성하는 것이라며 여기 주민들은 한국수력원자력이 광고를 많이 주는 지역신문들을 다 찢어버린다고 말했다. 실제로 경찰이 S지역신문 사장 자택도 경비하고 있었다.

군청 공무원들의 주민에 대한 감정도 적대감에 가까운 수준이다. 부안군청 정책홍보담당 공무원은 부안은 무정부상태라고 말했다.

한 군청 간부는 대부분 학력이 높지 않은 농민과 어민들이 반핵단체의 주장에 세뇌돼 정부 홍보물을 믿으려 하지 않는다며 우체국 집배원도 폭행당할까봐 정부 홍보물을 배달하지 않으려 한다고 말했다. 군청 입구에는 주민들의 난입을 막기 위해 모래주머니를 가득 채운 컨테이너 10대가 놓여 있었다.

경찰 대응=경찰은 21일 야간 방화시위 등을 사전 차단하기 위해 경찰력을 75개 중대 8000여명으로 늘리고 이 중 33개 중대 3500명을 면사무소 등 공공시설을 경비하기 위해 면지역까지 분산 배치했다.

경찰은 방어 위주의 경비 형태에서 벗어나 도로 검문검색을 통해 시위자를 찾아내고 도심 안팎에서 시위대를 압박하기로 했다. 이를 위해 부안읍으로 진입하는 모든 도로에 경찰을 배치하고 조명차 살수차 등 진압장비와 고성능 카메라 등 증거채집 장비를 보강했다. 19일의 시위와 관련해 전북지방경찰청은 연행한 주민 20명 중 11명에 대해 폭력 등의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주민 반응=이에 대해 군민대책위는 대형참사를 야기할 수 있는 방화를 자제해 주도록 주민들에게 당부하고 있으나 성난 주민들에게 먹혀들지 않고 있는 상태라며 공권력에 의한 밀어붙이기는 사태를 더욱 악화시킬 것이라고 반발했다.

대책위측은 경찰의 원천봉쇄에도 불구하고 야간 촛불시위는 소규모라도 계속할 것이라고 밝혔다.

주민들은 비민주적 절차로 시작된 핵폐기장 유치에 반발하는 것은 군민들의 생존권 문제인데도 정부가 연내 주민투표를 거부해 대화를 결렬시켰다며 공권력으로 밀어붙이면서 합리적이고 합법적으로 대응하라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주장했다.



김광오 장강명 kokim@donga.com tesomio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