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8년 외환위기 직후 강거루군()이라는 연극이 화제를 모았다. 대학 졸업 후 입사시험에서 번번이 낙방하고 부모에게 기생하며 후배들이 있는 학교 주변을 맴도는 캥거루족을 풍자한 작품이다. 그해 프랑스 시사주간지 렉스프레스는 높은 실업률 때문에 프랑스 20대의 80%, 스페인 2530세의 60%, 독일 23, 24세의 45%가 부모에게 기댄다며 이들을 캥거루 세대라 불렀다. 돌이켜보면 차라리 그때가 나았다. 캥거루족의 준동이 우리나라만의 문제가 아니라 세계적 현상이며 경제가 회복되면 캥거루족은 자연 멸종될 것이라는 희망이 있었으므로.
캥거루족의 생명력은 끈질기다. 20대의 48%가 부모에게 경제적으로 의존하고 있다는 조사가 지난해 나온 데 이어 최근 2년간 대졸취업자의 평균나이가 15개월가량 높아졌다는 조사결과도 나왔다. 외환위기 때만 해도 대학졸업장은 딴 뒤 취업이 안돼 어쩔 수 없이 부모 신세를 졌는데, 지금은 취업준비를 한다는 이유로 몇 년이고 졸업 자체를 미룬 채 자발적으로 부모 곁에 머문다는 얘기다. 경기불황과 취업난 때문이라지만 과연 그게 다일까.
캥거루족의 속내를 들여다보자. 이들은 겁이 많다. 어려서부터 공부해라 소리만 들어온 까닭에 제 손과 머리로 뭔가를 하는 데 익숙지 않다. 풍요 속에 자라 어려움을 극복하는 의지를 찾기 힘들다. 부모세대처럼 아등바등 살기도 싫고 웬만한 기업은 눈에 안 찬다. 이들에게 대학 울타리는 거대한 보호막이다. 좀 더 실력을 쌓아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있어 졸업기피, 편입, 대학원 진학을 마다않는다. 세상과 부닥쳐 보지도 않고 마냥 하산을 늦춘 채 하염없이 칼만 갈고 있는 꼴이다.
불행한 세대를 자처하는 이들에 대해선 기성세대도 책임이 크다. 과잉보호로 길러 온 부모 잘못이 있고 경제를 살리지 못한 정책 당국의 탓도 있다. 하지만 졸지에 이름을 도용당한 캥거루로선 억울할 것이다. 평균 1218년을 사는 캥거루도 새끼가 612개월만 되면 어미 배주머니에서 내보낸다. 사람으로 치면 예닐곱 살도 못 돼 독립하는 셈이다. 캥거루사회에서 한사코 어미를 떠나지 않으려는 새끼를 사람족이라 부른다면 어쩔 것인가.
김 순 덕 논설위원 yur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