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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갑신환국

Posted February. 01, 2004 2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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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숙종 15년(1689년)의 일이다. 숙종은 총애하던 후궁 장옥정(장희빈)에게 아들이 태어나자 그를 서둘러 원자()로 책봉하고자 했다. 왕비였던 인현왕후에게 정을 느끼지 못하고 후손도 없기 때문이었다. 숙종은 삼정승과 육조대신을 불러 뜻을 전했다. 승복할 수 없는 자는 관직을 내놓고 물러가라고 위협했다. 통촉해주기를 거듭 읍소했던 송시열과 김수항은 삭탈관직을 당했다. 삼정승이 하루아침에 갈려 남인정권으로 바뀌었고, 정적 100여명이 유배되었다. 기사()년에 일어난 이 사건을 기사환국이라 한다.

환국()은 어명에 불복하는 대신들을 갈아 치워 정권을 교체하는 것으로, 사대부의 간섭에서 벗어나 왕권을 강화하고자 했던 숙종 때에 3번이나 발생했다. 경신(1680), 기사(1689), 갑술(1694)환국이 그것이다. 그때마다 집권세력이 교체되고, 권력자들이 교살과 참형을 면치 못했다. 독재의 기질을 갖고 있었던 숙종은 자주 이런 극약 처방을 단행했다. 약 40년 뒤(1737년) 환국의 폐해가 극에 달하자 영조는 소모적 당쟁을 없애고 고른 인재 등용과 세력 균형을 위해 탕평책()을 실시했다. 대사면과 함께 화합정치를 요구한 것이다.

2004년 총선이 두 달 앞으로 다가왔다. 정국은 드디어 치열한 정치의 계절로 돌입했다. 공천 심사에 비상한 관심이 쏠리고 출사표를 낸 정치인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총선은 국민의 뜻으로 집권세력을 창출하는 합법적 절차다. 말하자면 왕명에 따른 자의적 정권 교체와는 본질적으로 다른 민주적 환국의 중대한 기회라고 할 것이다. 총선을 앞두고 거물급 정치인들이 속속 구속 수감되고 있다. 대선자금 경선자금 소용돌이가 부패정치의 싹을 도려내고 있는 것이다. 차제에 정치판을 완전히 바꾸라는 국민의 염원을 반영하는 듯도 하다. 그런데 그 소용돌이가 공교롭게도 지난 정권의 권력자들과 야당에 집중되는 듯한 인상이다. 부패정치인이야 처벌받아 마땅하겠으나 고백성사 후 화합정치도 해봄직하다는 사회지도층의 조심스러운 권고는 사정한파에 묻혔다. 올해가 갑신년이므로 바야흐로 갑신환국이 일어나는가보다.

송 호 근 객원논설위원서울대교수

hknsong@sn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