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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정치광고

Posted April. 05, 2004 2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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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소녀가 들판에서 데이지 꽃잎을 한 장씩 떼면서 숫자를 센다. 하나, 둘, 셋. 소녀가 열까지 세자 이번엔 굵은 남자의 목소리가 거꾸로 숫자를 헤아린다. 열, 아홉, 여덟. 이윽고 영()에 이르는 순간 고막을 울리는 굉음과 함께 화면은 원자폭탄의 버섯구름으로 뒤덮인다. 이어지는 음성. 위험은 이런 것이다. 하나님의 자손 모두가 사는 세상을 만드느냐, 아니면 암흑 속으로 들어가느냐. 1964년 9월 7일 밤 미국 CBS방송에 딱 한 차례 나간 린든 존슨 당시 민주당 대통령후보의 대선() 광고 내용이다.

미국에서 TV 정치광고는 드와이트 아이젠하워와 아들라이 스티븐슨이 맞붙은 1952년 대선 때 처음 등장했다. 그러나 선거전에서 막강한 위력을 발휘한 것은 존슨의 이 광고가 처음이었다. 데이지 꽃 광고로 잘 알려진 이 작품은 베트남전쟁에서 소형 핵무기를 사용할 수 있다는 배리 골드워터 공화당 후보의 보수 성향을 유권자에게 각인시켜 대성공을 거뒀다. 이로써 존슨은 라디오를 적극 활용한 프랭클린 루스벨트, TV 토론의 존 F 케네디와 함께 미국 선거운동 방식의 틀을 바꾼 인물로 남게 됐다.

우리나라의 경우 노무현 대통령이 TV 광고로 큰 덕을 봤다는 건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2002년 대선 때 팝가수 존 레넌의 곡 이매진(Imagine)을 배경으로 노 후보가 눈물을 떨어뜨리는 모습을 담은 감성적 광고는 난폭 운전 버스를 주제로 제작된 이회창 캠프의 이성적 광고에 비해 한결 호소력이 컸다는 평을 들었다. 17대 총선이 눈앞에 다가오면서 여야 정당이 또 한 차례 TV 광고를 준비하고 있다. 이번엔 어떤 광고가 유권자의 감수성을 자극할까.

그렇지 않아도 당사 이전이며 여야 총선 지휘부의 절하기 경쟁 등이 내용 없는 이미지 정치의 산물이라는 비판이 적지 않다. 정책과 인물은 사라지고 바람만 부는 총선에 대한 우려도 크다. 이런 마당에 감성적인 TV 광고가 유권자의 판단력을 더욱 흐려 놓는 일에 일조하지는 않을까? 결국 판단은 유권자의 몫이다. 자칫 감성에 휩쓸려 잘못된 선택을 할 경우 그 부담도 유권자 몫이니까.

송 문 홍 논설위원 songmh@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