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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식스티 나인

Posted April. 09, 2004 2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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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 하루키()와 함께 일본 문학계의 또 다른 무라카미로 통하는 무라카미 류( 52이하 류)의 작품들이 올해 들어 맹렬한 기세로 국내에서 복간되고 있다.

동방미디어가 무라카미 류 걸작선이라는 이름으로 라인 토파즈 등 7권을 새로 냈으며 최근 북스토리에서 그의 대표작 코인로커베이비스를, 큰나무에서 래플스 호텔을 펴내는 등 모두 15종의 단행본이 한꺼번에 쏟아져 나왔다.

이 같은 흐름은 1980년대 후반 이후 주로 해적판으로 소개됐던 류의 작품들이 이제 정식계약을 통해 복간되고 있음을 알리는 것이다. 또한 변태적이고 외설스러운가 하면 마초적이고 군국주의적이기까지 하다는 그간 류에 대한 절반의 평가가 서서히 보완될 가능성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여기에 90년대 후반 들어 일본 대중문화가 개방되고 요시모토 바나나, 야마다 에이미, 아사다 지로, 에쿠니 가오리 등의 작품이 위력을 발휘하자 출판계에서는 그렇다면 류도 다시 한번이라며 기대하고 있는 것이다.

류는 하루키가 부드러운 대신 여성적이며 서재에서 상상과 자료에 의존해 집필하는 점을 꼬집어 자폐()적인 작가라고 하루키와의 대담에서 몰아붙인 적이 있다. 그러자 하루키는 류가 발 빠르게 움직이며 영화 음악 요리 스포츠 어느 분야에서든 열정적이라는 점에서 자개()적인 작가라고 오히려 옹호했다.

류는 분방한 에너지의 다작() 작가이며 1976년 데뷔 후부터 일본 사회의 최신 조류를 민감하게 포착해 써내는 민첩성을 가졌다. 따라서 그의 작품은 그의 입체적인 캐릭터뿐 아니라 일본 사회의 여러 얼굴을 담고 있으며 다양한 빛깔을 품고 있다.

류의 어머니는 일본인이지만 경남 마산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여고까지 마쳤다. 그의 작품 가운데 가장 한국 젊은이들에게 읽히기 쉬운 것으로는 역시 최근 복간된 69:식스티나인을 들 수 있다. 얼핏 변태를 연상시키는 제목이지만 드골 정권이 시위로 물러나고 비틀스의 노래가 어디서든 울려 퍼지던 시절, (작품 속의) 내가 고교 3학년이었던 1969년을 가리키는 말이다.

겐이라 불리는 주인공은 호밀밭의 파수꾼에 나오는 홀든 콜필드와 비슷하면서도 다르다. 어른들 세계의 위선과 억압에 반발하지만 훨씬 더 외향적이고 영악하며 저속하면서도 유머러스하다. 이런 식이다. 나는 싸구려 빵을 먹는 대신 주린 배를 움켜쥐며 돈을 저축했다. 사르트르, 카뮈, 오에 겐자부로의 책을 사기 위해서였다면 거짓말이고. 사실은 나긋나긋한 여학생을 꾈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서였다.

그는 친구들 이름 앞 글자를 딴 이야야 클럽을 만들어 영화 음악을 함께 할 수 있는 페스티벌을 기획한다. 그러다 가까워진 어여쁜 여학생이 정치와 혁명에 큰 흥미를 느끼고 있다는 걸 알게 된다. 그는 결국 상상력이 권력을 쟁취한다는 플래카드를 내걸고 학교를 봉쇄한 뒤 후배에게 교장의 책상에 대변을 보게 하는 등 멋지게 까불다가 무기정학을 먹는다. 하지만 정학이 끝나자 다시 페스티벌을 준비해 나간다.

황당하지만 기분 좋은 몽상이 쑥스럽게 깨지는 과정, 비장하고 결연한 장면들이 결국 코미디로 끝나는 전개가 어이없어서 웃음을 터뜨리게 한다. 진지하되 참담한 청춘을 다룬 그의 선배 작가 미시마 유키오의 금각사를 생각나게 하는 작품이다. 류는 금각()이 불타버린 자리에 록 스테이지를 세웠던 것이다.



권기태 kk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