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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가치 논쟁

Posted June. 13, 2004 2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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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대통령 탄핵 결의안 관련 방송이 공정하지 않았다는 한국언론학회의 연구보고서가 나오자 방송사 노조와 민언련, 방송위원회 등에서 보고서의 공정성을 문제삼고 나왔다. 언론학자들까지 가세해도 공정성 논란은 잦아들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신문은 언론학회 보고서를 대서특필하고, 방송은 보고서 내용을 반박하는 논리를 도드라지게 보도한다. 학회측에서는 각종 학문적인 틀을 사용해 꼼꼼하게 분석했다고 하고, 비판하는 측에서는 그런 산술적인 공정성은 의미가 없다고 일갈한다.

양파껍질처럼 계속 벗겨도 논쟁의 끝이 보이지 않는 이유는 논리를 구성하는 개념들의 정의가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공정성의 정의가 서로 다르니 논쟁을 백날 해도 헛돌기만 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논쟁 당사자가 상호 개념에 대한 정의부터 다잡고 들어가야 한다고 가르쳤다. 주로 옳고 그름, 선함과 악함, 아름다움과 추함 등 가치 논쟁의 첫 단계는 이렇게 논쟁 대상에 대한 정의를 상호 토론하는 것에서 시작했다.

사회가 복잡해지고 논쟁의 기술도 발달하면서 18세기 무렵 수사학자들은 정책 논쟁의 기법들을 발명했다. 고대 그리스 사람들은 정적인 가치에 대한 논쟁을 즐겼지만 요즘 사람들은 그렇게 한가하지 않다. 방향성이 분명한 정책을 놓고 구체적인 합의를 위해 토론하는 일이 훨씬 많아졌다. 그러나 사실 정책 논쟁도 출발은 가치 논쟁에서 시작한다. 정책 논쟁에서도 개념의 정의를 각기 다르게 이해한다면 논의는 한 발짝도 진전되지 못한다.

탄핵 보도의 공정성 시비는 신문과 방송이 맞서는 구도로 진행되고 있으나 애초 그 논쟁은 언론의 영역을 뛰어넘는 것이었다. 학문적으로 규명한다고 해결될 사안은 더욱 아니었다. 논의의 수준이 개념에 대한 정의에서 맴도는, 우리 사회의 두개의 다른 가치관이 맞서는 논쟁인 것이다. 양측이 화합할 수 없는 건, 애당초 서로의 자에 그어진 눈금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 옛날 진시황도 도량형을 통일하는 데서 국가 통합의 기틀을 잡아 나갔다. 언론과 정부, 신문과 방송, 메이저와 마이너 언론들이 공정성에 대해 동일한 잣대를 갖는 데서부터 언론 개혁은 시작돼야 한다.

박성희 객원논설위원이화여대 교수언론학

shpark1@ewha.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