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가니스탄의 14세 소녀 마리나 카림은 자신이 장애인이 된 사고를 기억하지 못한다. 어머니에 따르면 유아 때 중화상을 입고 병원에 실려 가 오른쪽 다리의 절반을 잘라냈고 왼쪽 다리의 발가락을 모두 잃어버렸다. 그녀는 탈레반 집권 기간(19952001년)에는 학교에 다니지 못했다. 탈레반 정권은 여성의 학교 교육을 금지했다. 북부동맹군과 탈레반 사이에 전쟁이 벌어지자 그녀의 가족은 카불로 이사했다. 그녀의 아버지는 폐허가 된 카불 시내에서 가족을 겨우 가려 줄 지붕을 찾았다.
카림은 아테네 장애인올림픽에 국가대표선수로 선발돼 카불공항을 떠나던 날 아버지 어머니와 형제 친척들이 배웅 나왔다. 집안의 남자 형제는 10명이고 자매는 8명이다. 18명의 형제자매가 모두 한 어머니에게서 태어났는지에 대해선 알려지지 않았다. 100m 달리기에서 꼴찌를 한 그녀는 경기를 마치고 나서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울음을 터뜨렸다. 공항에 배웅 나왔던 가족에게 메달을 가져다 줄 수 없게 돼서일까.
카림은 다리 장애인과 팔 장애인이 함께 달리기 경주를 하는 것은 공평하지 않다고 말했다. 각기 장애의 종류와 등급이 다른 장애인들의 기량을 공평하게 비교하는 것은 장애인올림픽의 어려운 숙제다. 그녀는 100m를 18초85에 뛰었지만 장애인올림픽의 진짜 챔피언이라는 찬사를 받았다. 아프가니스탄 소녀는 전쟁의 참화를 딛고 일어서려는 모국의 국민, 인간으로서의 권리를 회복하기 위해 애쓰는 이슬람국가 여성, 그리고 지구촌의 장애인들에게 용기를 불어넣어 주었다.
통계청의 사망원인 통계를 보면 우리나라에서는 작년에 하루 30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자살은 20대, 30대에서 사망원인 1위다. 꿈이 없는 청춘은 팔다리가 없는 장애보다 더 절망적인가. 직장인 4명 중 1명이 알코올 의존증 초기라는 삼성경제연구소 통계도 있었다. 자살과 알코올 의존증은 현실도피라는 공통 특성을 지닌다. 카림은 절망적인 상황에서 삶의 투혼을 불태웠다. 그녀는 베이징 장애인올림픽에 참여하고 싶고 장래 의사가 되고 싶다는 꿈을 말했다. 꿈은 용기를 준다. 꿈을 잃어버린 삶이 극단적인 현실도피를 택한다.
황 호 택 논설위원 hthwa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