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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여워' 예지원

Posted November. 10, 2004 2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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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영화 대한민국 헌법 제1조에서 보궐선거에 출마하는 윤락녀로 출연, 영화 촬영을 불허하는 국회의 담을 넘으며 세상을 시끌벅적하게 했던 예지원(32). 그가 또 한번 세상을 떠들썩하게 할 태세다.

26일 개봉되는 초현실적인, 혹은 마술적인 느낌의 영화 귀여워(김수현 감독)에서 배다른 세 형제와 그 아버지의 사랑을 두루 받아주는 스펀지 같은 여자 순이로 등장하는 것. 순이는 철거 직전의 서울 황학동 아파트를 배경으로 퀵서비스맨인 장남 963(김석훈), 견인차 운전사인 둘째 개코(선우), 조직폭력배인 막내 뭐시기(정재영), 박수무당인 아버지 장수로(장선우)를 오가며 아슬아슬한 사각 애정행각을 벌인다.

비 오던 5일 밤 예지원을 만났다.

실제 보니 얼굴이 아주 작네요.

그런 거 같아요?(웃음) 화면에선 좀 커 보이거든요. 얼굴이 평면적이라, 클로즈업할 땐 얼굴이 스크린만 해지니까 더 그렇지요.

순이는 모든 남자들이 나를 좋아했으면 좋겠어라고 하죠. 동의하나요?

사실 모든 여자의 마음이죠. 하지만 대놓고 이걸 말하는 순간 이 사회에선 아웃되죠. 이런 마음을 기술적으로 털어놓는 여자들이 주위에 몇 명 있는데(웃음), 그것도 능력이라고 봐요, 나는.

한 여자가 가족인 네 남자와 사랑을 하죠. 비현실적인데요.

현실에선 영화보다 더 한 일도 있더라고요.

패륜 아닌가요?

아니요. 그들이 사회에 길들여져 있지 않기 때문이에요. 남들과 맞춰 살아본 적이 없고, 번듯한 직장도 다니지 못한 채 사회와 타협하는 법이 없죠. 하지만 나쁜 놈은 하나도 없잖아요. 이 영화는 속으로 들어가서 느낄 때와 한 걸음 떨어져 쳐다볼 때 엄청난 차이가 나요. 도덕과 패륜의 구분도 그런 거 같아요.

순이는 대자연의 어머니인가요? 상처받은 남자들을 다 받아주고 치유해 주는 순이는 뭐시기가 저, 가슴 좀 만져 봐도 하기가 무섭게 웃옷을 벗잖아요.

순이는 네 남자를 남성으로도 좋아하지만 그들의 영혼을 좋아하는 거죠. 순이에겐 성행위 자체가 일종의 보시랄까. 남자들의 비어있고 공허한 부분을 채워주는 거죠. 일반적인 도덕의 잣대로는 판단할 수 없어요.

이번 영화도 그렇고 전작 생활의 발견도 그렇고, 예지원씨는 남자들에게 독특한 판타지를 심어줘요. 나도 사랑해 줄 것 같고, 또 다른 남자도 똑같이 사랑해 줄 것 같은.

그런 환상을 품어준다면 저야 좋죠.(웃음) 하지만 이번엔 몸무게 늘리고, 얼굴도 일부러 부어있는 상태로 촬영해서. 촬영 전날 음식을 조심하거나, 사우나에 가거나, 얼굴에 팩을 붙이는 일을 하지 않았어요. 뭔가 이 세상에는 없는, 야성적인 여자로 보이고 싶었거든요.

무용으로 단련된 다리도 그런 느낌이 들었어요.

제 다리에 알이 박혀 어찌 보면 날씬하고 어찌 보면 되게 안 예뻐요. 하지만 꼭 들판을 뛰어다니는 야생마 같은 여자로 보이고 싶었어요. 영화 길의 백치 여인 젤소미나처럼요. 사실 여자들은 (젓가락을 들어 보이며) 이런 다리를 좋아하는데.

섹스 신에서 여배우들은 보통 자기중심적인 느낌을 줘요. 반면 예지원씨는 진짜 상대를 사랑하는 것 같은 느낌을 줘요.

맞아요. 그래요. 전 사람 타는 게 있어요. 좋은 작품과 환경과 좋은 사람들과 함께 있으면 저도 모르게 연애하는 기분이 들어요. 그만큼 사랑을 받는 것도 같고요. 촬영이 끝나면 우울증도 와요. 아, 이걸(사랑의 마음과 공허함) 어떻게 채워야 하지, 하고요. 지금도 만나면 너무 흥분이 돼요. 좋아서. 하지만 이건 단점이기도 해요. 좋을 땐 너무 좋아하지만, 그 반대가 될 때도 있거든요. 제가 단순해서 그래요. 그래서 단순한 순이랑 비슷해요. 정말 맹목적인 면이 있어요.

연기력에 비해 대중적 인기가 못 미치는 건 아닌가요?

저의 운명이겠죠. 앞으로도 몸은 힘들지만 정신적으론 충만한 작품들을 할 거예요. 이 영화에서 순이는 어쨌든 좋았어. 모두가 날 좋아해주고. 아무도 날 궁금해 하지 않고라고 하잖아요. 제 심정이 그래요. 사람들이 배우에게 열광하다가도 과거에 연연하고 사소한 걸로 돌아서 버릴 때가 있거든요.



이승재 sjd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