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학이 결혼과 섹스에 대해 여대생들을 잘못 가르치고 있다. 페미니스트들이 경악함직한 이런 주장을 편 건 남자 아닌 또 다른 페미니스트 그룹이었다. 독립여성포럼(IWF)이라는 미국의 자유주의 여성단체가 대학에서 쓰이는 여성학 교재를 분석한 뒤 커리어를 갖는 것만이 여성의 성공이고, 결혼과 가족을 가부장적 구속으로 믿게 만든다는 보고서를 올해 초에 낸 것이다. 페미니즘의 다양화라고 할까.
페미니즘에도 흐름이 있다. 20세기 전후 서구의 여성 참정권 투쟁이 첫 물결이라면 1960,70년대 제2의 물결은 모든 억압에서의 해방을 추구하는 남녀평등운동으로 집약된다. 80년대 들면서 협동과 직관, 친밀성 등 여성적 가치에 주목하는 여성학 이론이 떴다. 덕분에 여성의 의식과 지위는 높아졌지만 페미니즘은 좀 과격해졌다. 포르노는 여성을 복종시키기 위한 사회적 무기라는 식이다. 대학에서 여성학을 가르치는 교수 중엔 이때 공부한 세대가 적지 않다.
남자가 왜 적이냐. 여자들이 좋아하는데 하며 나선 이들이 90년대 미국의 자유주의 페미니스트들이다. 우리나라엔 많이 소개되지 않았으나 개인의 선택과 책임, 시장경제를 중시하는 IWF는 기존의 페미니즘을 좌파적으로 본다. 남들이 보기에 이들이 우파적인 건 당연하다. 서구 중심을 비판하는 시각도 나왔다. 이제 인종과 국적 계급 종교 성적 정체성에 따라 시각도 다양하게, 정치 경제 환경 전쟁 문화 등의 분야도 다채롭게 제3의 페미니즘이 펼쳐지는 추세다.
서울에서 열리고 있는 제9차 세계여성학대회의 주제 역시 평화와 반전(), 세계화, 여성주의 리더십 등 다양하다. 대회를 주관한 한국여성학회와 이화여대는 우리나라에 처음 여성학을 도입한 것은 물론 양성평등의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데 큰 몫을 한 것으로 평가된다. 한국의 남녀평등 성취도가 세계 58개국 중 54위다. 어떤 물결을 타든 여성 개인, 그리고 페미니즘이 가야 할 길은 아직도 멀다.
김 순 덕 논설위원 yur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