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우라지의 아라리 가락은 아직도 처연한데 떼배니 뱃사공은 고사하고 밧줄 잡고 건너던 함지박배마저도 이제는 찾을 길 없다. 그 배 거두고 다리 놓은 지 오래건만 옛 다리마저도 자취를 감춘 지금. 그 너른 물길 아우라지를 때깔 고운 새 다리 두 개가 가로지른다. 태풍 루사로 쓸려간 뒤다.
그중 하나는 정선선 철로다. 증산과 구절리, 두 역 사이 정선 오지를 한가로이 오가던 꼬마열차(객차 한 칸짜리)의 전용철로였다. 사공 사라진 아우라지에서 정선아라리 애잔한 가락에 추임새 될 만한 유일한 유물이던 그 열차. 그마저도 올봄 이 철교에서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아우라지와 구절리, 정선선 마지막 두 역의 7.2km 구간 철로가 적자로 폐선된 탓이다. 꼬마열차는 이제 증산아우라지 구간만 운행한다.
세월은 흐르고 세상은 변하기 마련. 아우라지라고 예외일 수 없다. 그래도 아쉬움 큰 것은 올곧이 남은 옛것 찾기가 갈수록 어려워지는 이즈음에 그마저도 경제논리에 의해 역사 속으로 퇴출당한 서러움 때문이다.
지난달 22일 오전. 정선선의 막장, 구절리역을 찾았다. 바늘처럼 치솟은 노추 옥갑 도장 세 산에 갇혀 하늘마저 조각난 오지의 간이역. 주절주절 흐르는 송천을 벗 삼아 이 물 거슬러 야트막한 경사를 기어 오른 단선의 정선선 철로는 짧은 터널 지나 자리 잡은 이 역에서 가쁜 숨 몰아쉬고 그 행진을 접는다.
구절리역. 이곳은 별리의 현장이다. 그것도 여러 번. 마지막 비둘기호, 마지막 통일호 열차가 역사 속으로 떠난 곳이 바로 여기다. 석탄난로의 온기로 언 몸을 녹이던 옹색한 비둘기호 열차도, 봇짐 바리바리 싸들고 장터 다녀오던 할머니가 꼬깃꼬깃 접은 천 원짜리 지폐 몇 장을 고이 접어 손자 용돈 줄 참으로 고이 춤에 넣던 모습을 엿볼 수 있던 낡은 통일호 열차도 모두 예서 이 철로와 사람들에게 이별을 고했다.
그러나 이날만큼은 구절리가 끊을 절()자 아홉의 이별 역이 아니었다. 거꾸로 새 역사를 여는 만남의 역이 되었다. 구절리를 출발점으로 한 정선선의 새 주인 레일 바이크가 이 철로를 달리게 된 덕분이다.
레일 바이크란 페달을 밟아 체인으로 바퀴를 움직이는 자전차. 레일 위로만 다니고 네 바퀴를 이용한다는 것만 다를 뿐 운전 요령은 자전거와 같다. 게다가 아우라지까지는 철로가 내리막이어서 힘도 들지 않는다. 이 새로운 탈것에는 폐선철로 활용과 탄광촌 정선의 역사가 담긴 정선선을 어떻게든 지켜보려는 주민과 김원창 정선군수의 노고가 담겨 있다.
레일바이크에 올라 페달을 밟았다. 생각보다 힘들지 않다. 오히려 자전거보다 힘이 덜 든다. 둘이 함께 젓기 때문이리라. 터널에 들어서니 원색의 조명으로 색다른 느낌이 든다. 그러나 그것보다 더 환상적인 것이 있다. 냉장고처럼 서늘한 기운이다. 한여름 무더위 식히기에 그만이다.
시속 15km 정도로 천천히 달리는 레일바이크. 철로 정면으로 펼쳐지는 풍경이 기막히다. 구절리부터 레일바이크 곁을 떠나지 않는 송천의 물줄기. 그 물가로 레일바이크가 지나니 강상을 스친 시원한 바람에 더위는 간데없다. 이런 신선놀음을 하다 보면 터널 2개를 훌쩍 지난다. 레일바이크 휴게소는 그 즈음에 나타난다. 송천 강둑에 마련한 작은 플랫폼이다. 여기서 기념촬영도 하고 강바람도 쐬며 목을 축인다.
종착역을 앞두고는 큰 다리 하나를 건넌다. 태백을 훑고 내려온 임계천과 구절리부터 앞서거니 뒤서거니 내내 함께 해 온 송천, 이 두 물이 만나 한 물(조양강)로 아우러지는 아우라지다. 다리 중간에서 오른편 강둑을 보면 석상 하나가 서 있다. 떼꾼인 낭군을 기다리는 아우라지 처녀다. 이어 아우라지역 구내로 들어선다. 시계를 보니 꼭 40분 걸렸다.
정선 오지의 고운 속살을 이보다 더 확실하게 감상할 수 있는 것이 또 있을까. 레일바이크투어는 올여름 꼭 한번 해볼 만한 멋진 여행이다.
조성하 summe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