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부가 오늘 평양에서 열리는 제16차 남북 장관급회담에서 한반도 평화문제를 중점 논의할 것이라고 밝혔다. 남북 협력을 경제사회 분야에서 정치군사 분야로 확대할 필요가 있고, 여건도 갖춰졌기 때문이라고 한다.
통일부는 평화문제라는 모호한 용어를 쓰고 있지만 한반도의 평화는 1953년 미국 중국 북한 3자 사이에 체결된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바꾸는 문제를 떠나서 생각할 수 없다. 평화문제 평화체제 등 어떤 표현을 쓰더라도 결국 평화협정에 관한 문제일 수밖에 없다. 이 점에서 통일부는 의도적으로 초점을 피해 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평화협정 문제를 논의하려면 북의 입장 변화가 전제돼야 한다. 한국은 비록 정전협정에 서명하지는 않았지만 한미연합군의 일원으로 625전쟁을 치렀으며 엄연한 정전 당사국이다. 그런데도 북은 남을 정전협정 당사국으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 한미 양국 주도하에 남북한과 미 중이 참가한 한반도 평화구축 4자 회담이 1997년 3월부터 1999년 4월까지 5차례나 열렸지만 결실 없이 유아무야 되고 말았던 것도 이 때문이다.
평화문제는 필연적으로 정치군사문제를 다뤄야 하기 때문에 장성급회담에서 논의돼야 하나 남북은 아직 회담 날짜도 못 잡고 있다. 통일부는 지난달 4차 6자회담에서 북한이 평화체제 논의에 합의해 줬다며 크게 의미를 부여하려 한다. 그러나 이는 핵 문제를 평화체제 문제로 대체함으로써 미국의 핵 포기 공세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북의 전술적 대응임을 알아야 한다. 그렇지 않고는 백두산에서 장성급회담을 개최하기로 합의까지 해놓고 날짜 잡기를 피할 이유가 없다.
사정이 이런데도 핵 협상 전망이 불투명한 가운데 무리하게 평화체제 논의를 고집할 경우 북은 생색내기용으로 공동합의문에 한 줄 언급해 주고 그 대가로 다른 것을 요구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가장 시급히 해결해야 할 과제는 당연히 북한 핵이다. 이 문제가 풀려야 북-미관계에 돌파구가 열리고, 그 토대 위에서 실질적인 평화체제 문제를 논의해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