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 to contents

[오피니언] 광화문

Posted January. 26, 2006 03:03   

中文

조선왕조가 서울에 두 개의 궁궐을 지은 것은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기 위해서였다. 궁궐이 하나뿐이면 화재나 변란이 일어났을 때 왕이 갈 곳이 없다. 우선순위에서 앞서는 제1궁궐을 법궁(), 제2궁궐을 이궁()으로 불렀다. 조선 초기의 법궁은 경복궁이었고 이궁은 창덕궁이었다. 임진왜란으로 두 궁궐이 소실되자 광해군은 경복궁은 내버려 두고 창덕궁만 중건하는 한편 인왕산 아래 새로 인경궁과 경덕궁을 지었다. 창덕궁은 법궁으로 지위가 올라갔다.

이후 궁궐들은 여러 번 정치적 회오리에 휘말린다. 광해군을 내쫓고 즉위한 인조는 광해군이 세운 인경궁을 헐어 내고 그 자재를 창덕궁 보수에 사용했다. 대원군은 왕실의 권위를 위해 국가재정을 고갈시켜 가며 경복궁을 중건했다. 일제가 경복궁 안에 총독부 건물을 짓고 광화문을 다른 자리로 옮긴 것도 조선왕조의 맥을 끊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문화재청이 광화문의 해체와 복원을 비롯한 서울 역사도시 조성계획을 내놓았다. 그러나 광화문을 원위치로 옮기거나 서울 성곽을 복원하는 계획은 여러 번 알려졌던 내용이라 새로울 게 없다. 북악산 개방 계획에서 숙정문을 개방한다는 것도 지난해 9월 발표됐던 것이다. 광화문 앞에 광장을 조성하는 게 새로운 소식이지만 서울시와는 상세한 협의가 없었다고 한다. 예산 문제에 대해 정확한 액수는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는 문화재청의 답변 또한 어설프기 짝이 없다.

이처럼 덜 익은 사안을 요란스레 발표부터 하니까 야당 소속인 서울시장의 청계천 복원에 대적하기 위한 정치적 작품이 아니냐는 얘기가 나오는 것이다. 단계별로 이뤄지는 북악산의 첫 개방 날짜가 지방선거(5월) 한 달 전이고, 전면 개방이 되는 날짜가 대선을 앞둔 내년 10월인 점도 개운하지 않다. 서울의 역사를 복원하자는 걸 탓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마치 선거일정에 맞추듯 서두르다가는 뜻 깊은 역사()를 그르칠 위험이 크다. 더는 정치의 공간이 될 수 없는 경복궁을 정권을 위해 동원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홍 찬 식 논설위원 chansi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