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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만난 한일.. 내일 물러설수 없는 한판 승부

다시 만난 한일.. 내일 물러설수 없는 한판 승부

Posted March. 18, 2006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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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감독의 프로필을 보면 선수 생활은 지극히 짧은 반면 지도자 생활은 유난히 길다. 배문고를 졸업하고 당시 실업 최강 한일은행에 들어갔지만 불과 25세 때인 1972년에 잦은 부상으로 유니폼을 벗었다.

김 감독은 1982년 프로야구가 창단됐을 때도 원년 지도자로는 합류하지 못했다. 1986년이 돼서야 현 삼성 사장인 김응룡 해태 감독의 부름을 받아 투수 코치로 프로에 발을 들여놓았다.

반면 오 감독은 설명이 필요 없는 슈퍼스타. 19세 때인 1959년 그가 일본 최고 명문 요미우리에 입단하자마자 팀은 9년 연속 우승했다. 3년 후 첫 홈런왕에 오른 것을 시작으로 11년 연속 홈런왕을 차지했다. 2003년 당시 삼성 이승엽(현 요미우리)에 의해 깨지긴 했지만 1964년에는 55개의 홈런을 날려 아시아 신기록을 세웠고 통산 868개 홈런의 세계 기록(비공인)도 그의 것이다. 지도자 생활도 대비가 된다. 김 감독은 1990년이 돼서야 만년 하위팀 쌍방울의 초대 감독으로 프로 사령탑에 데뷔했다. 이런 그가 우승 감독이 되기는 요원한 일. 반면 오 감독은 1984년 요미우리가 그의 은퇴 선언과 동시에 모셔 갔다.

둘의 야구 철학은 더욱 대조적이다. WBC 대회 기간 화두였던 한국의 큰 야구와 일본의 작은 야구는 두 감독의 스타일 차이에서 비롯됐다.

김 감독은 선수의 능력도 중요하지만 경험을 높이 사고, 가능성이 보이는 선수는 될 때까지 밀어주는 기다림의 미덕이 주무기. 말을 물가로 끌고 갈 수는 있지만 강제로 물을 먹일 수 없다는 격언은 그가 가장 즐겨 하는 말이다.

이번 대회에서 최희섭(LA 다저스)의 방망이가 내내 부진했지만 끝까지 클린업 트리오에 기용했고 전병두(기아) 같은 신예를 대표팀에 깜짝 발탁한 것은 대표적인 예. 결국 최희섭은 14일 미국전에서 쐐기 3점 홈런을 쳐 냈고 전병두는 몇 차례의 효과적인 중간 계투로 한국의 철옹성 마운드에 기여했다.

반면 오 감독은 명성과 관록보다는 실력 지상주의로 기동력과 번트, 밀어치기를 애용한다. 데이터를 중시해 아무리 에이스나 홈런 타자라도 필요에 따라선 과감히 교체를 단행한다. 이러다 보니 선수들은 하나의 인격체라기보다는 기계의 부품에 가깝다는 혹평이 나올 법도 하다.

그러나 일본의 작은 야구는 미국과 멕시코를 쩔쩔매게 하는 등 메이저리그 팬과 관계자들에겐 한국과는 또 다른 팀 컬러로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이제 두 나라는 19일 낮 12시 미 샌디에이고 펫코파크에서 결승 진출을 놓고 그야말로 물러설 곳이 없는 외나무다리 대결을 펼쳐야 한다.

5일 일본 도쿄돔에서 열린 아시아 예선과 16일 미 애너하임 에인절스타디움에서 열린 본선 8강 1조 리그 경기 모두 한국의 1점 차 승리로 끝났다.

이대로 끝났다면 한일 라이벌전은 한국과 김 감독의 완승으로 기록됐을 것. 하지만 하루 만에 사정은 급변했다. 17일 전문가들의 예상을 뒤엎고 멕시코가 미국을 2-1로 꺾으면서 일본이 최소 실점 원칙에 의해 조 2위가 됨에 따라 한일 간 세 번째 대결이 성사된 것이다.

먼저 두 번의 승리는 이제 아무런 의미가 없게 됐다. 일본 야구 영웅 스즈키 이치로(시애틀)의 30년 발언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준결승에서 이긴 팀은 역사에 남을 것이고, 진 팀은 쓸쓸히 귀국 보따리를 싸야 한다.



장환수 zangpab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