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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화가 삼켜버린 세계문화유산

Posted May. 02, 2006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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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교육과학문화기구(UNESCO유네스코)의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경기 수원시 화성(사적 제3호)의 서장대() 누각 2층이 방화로 모두 소실됐다. 서장대는 평소 하루에도 수만 명의 관람객이 찾는 곳이지만 소화전이 설치돼 있지 않은 데다 야간순찰도 전무해 화재에 무방비 상태였던 것으로 드러났다.

이에 앞서 지난달 서울 창경궁 문정전도 문 일부가 불에 타 훼손되는 등 최근 들어 문화재 방화사건이 잇따르고 있어 문화재 관리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어이없는 방화=1일 오전 1시 35분경 수원시 팔달구 남창동 팔달산 정상의 서장대 누각 2층에 안모(24무직) 씨가 자물쇠로 잠긴 누각의 경첩을 돌로 부수고 침입해 자신의 속옷 등에 라이터로 불을 붙인 뒤 바닥에 던졌다.

불은 순식간에 목조건물인 누각 기둥과 서까래 등으로 옮겨 붙으며 누각 2층(19m)을 모두 태웠다.

불이 나자 소방차 10대와 소방관 40여 명이 동원돼 20여 분 만에 불길을 잡았지만 누각 소실을 막지는 못했다.

화성사업소 측은 1996년 큰불로 서장대 1, 2층이 모두 타 복원했다며 이번에 1층은 불에 타지 않았지만 1, 2층이 연결된 통기둥으로 된 건물이어서 전체를 복원해야 한다고 밝혔다. 서장대 복원에는 10월까지 6억 원가량이 소요될 전망이다.

용의자 안 씨는 불을 낸 뒤 화재 현장에서 10여m 떨어진 망루에서 불을 지켜보다 출동한 경찰과 소방 당국에 붙잡혔다.

안 씨는 경찰에서 수원 만석공원에서 혼자 소주를 2병가량 마신 뒤 서장대에 갔다가 2층 누각에 뭐가 있는지 궁금해 올라갔다며 누각에 무당 옷 같은 것(순라군 옷)이 있어 입어 봤는데 마치 귀신이 든 것 같아 옷을 벗어 불을 붙였다고 진술했다.

중학교 중퇴 학력의 안 씨는 공장 등에서 일하다 최근 3개월 동안 직장 없이 카드 빚을 진 채 부모에게서 용돈을 받아 생활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안 씨에 대해 문화재보호법 위반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화재 무방비=화재 당시 서장대에는 소화전이 설치돼 있지 않았을 뿐 아니라 소화기도 2개에 불과해 초기 진압에 실패한 것으로 드러났다.

또 24시간 개방되는 현실에도 불구하고 밤 시간대 순찰근무 등 문화재 훼손에 대한 방비가 전무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화성 성곽을 관리하는 수원시 화성사업소에는 40여 명이 근무하지만 일과시간(오전 9시오후 6시) 이후에는 사업소 사무실에서 당직만 서고 있다.

이에 앞서 지난달 26일에는 서울 창경궁 문정전에서 최모(68) 씨가 신문지와 부탄가스통을 이용해 불을 질렀다. 당시 관리 직원들이 곧바로 진화에 나서 큰 피해는 없었지만 문정전 왼쪽 문이 타면서 400만 원의 재산 피해를 냈다.



남경현 bibulu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