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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사랑하는 나의 아버지 듣고 계시죠?

Posted May. 16, 2006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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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이 순간 서울에서 아버지의 장례식이 열리고 있습니다. 제가 여러분 앞에서 노래를 하는 것이 옳은 일인지 잘 모르겠네요. 아버지가 하늘에서 제 노래를 잘 듣고 계시리라 믿습니다.

지난 달 4일 프랑스 파리의 샤틀레 극장. 예정된 레퍼토리를 모두 부른 소프라노 조수미(44) 씨가 프랑스어로 이렇게 말하자 객석은 술렁였다. 이어 조 씨는 아버지를 위한 앙코르 곡으로 슈베르트의 아베 마리아를 불렀다. 숙연하게 듣고 있던 청중은 노래가 끝난 후 모두 일어나 10여 분 동안 기립박수를 보내며 조 씨를 위로했다.

올해 데뷔 20주년을 맞은 소프라노 조수미 씨. 13일 오후 인천공항에 내리자마자 그는 서울 흑석동 성당 내 납골당 평화의 집을 찾았다. 이 곳에서 그는 아버지 조언호 씨의 유골함을 쓰다듬으며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임종은 물론이고 장례식에도 참석하지 못한 회한 때문이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고 공연을 취소하려고 했더니 독창회 티켓이 오래 전에 다 팔린데다가, 공연 실황을 DVD로 녹화하기 위해 스태프만 30여 명이 기다리고 있었어요. 아버지와 어머니는 생전에 가족 보다는 공인으로서, 음악연주가로서의 생활을 먼저 생각하라고 하셨죠. 가족들과 상의한 후 공연을 하기로 결정했습니다.

형언할 수 없는 감정의 파도에 휩싸여서일까. 조 씨는 이날 자신도 놀랄 만큼 아름답고 우렁찬 고음의 목소리로 노래했다. 그는 8월 말 출시될 이 공연 실황 DVD에 아버지께 바치는 음악회라는 타이틀을 달았다.

16일 오후 8시 경기 성남아트센터 오페라하우스에서 갖는 독창회에서는 푸치니 오페라 잔니 스키키의 아리아 오 사랑하는 아버지(O mio babbino caro)를 앙코르 곡으로 부를 생각이다.

1960년대부터 세계 각국을 돌아다니며 무역업을 한 조 씨의 아버지는 런던의 코벤트 가든, 빈의 오페라하우스, 밀라노의 라 스칼라 등 세계적인 오페라하우스의 소개 책자를 갖다 주며 외동딸에게 성악가의 꿈을 키워주었다. 1984년 조 씨가 서울대 음대 2년을 마치고 이탈리아 산타 체칠리아 음악원으로 유학을 떠난다고 했을 때 아버지는 딸의 로마행 비행기 티켓과 생활비를 마련하지 못해 밤새 잠 못 이루며 고민했다고 한다.

어렵게 제 유학 비용을 마련한 아버지가 나중에 이탈리아에 와서 제가 살던 셋방을 보시고는 피아노도 들어갈 수 없는 곳에서 어떻게 생활하느냐며 제 손을 한참 붙잡고 계셨죠.

결국 아버지는 딸에게 중고 피아노와 새 셋방을 구해주고서야 한국으로 돌아갔다. 조 씨는 아버지가 사준 피아노로 연습해 1985년부터 잇따라 이탈리아 비오티 국제 콩쿠르 등을 제패하며 세계무대에 우뚝 섰다.

조 씨는 19일 아버지의 사십구재 미사에 참석한 뒤 22일 캐나다 밴쿠버 공연을 위해 출국할 예정이다.

아버지는 무뚝뚝한 분이셨지만 늘 저를 든든하게 받쳐주셨어요. 생전에 아버지를 위한 음악회를 꼭 한번 열어드리고 싶었는데. 돌아가신 후 음악회를 열게 되니 회한이 됩니다.



전승훈 raph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