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엽(30요미우리)이 삼성 시절인 2003년 56개의 홈런을 쳐내 오 사다하루(66소프트뱅크 감독)의 아시아 기록(55개)을 뛰어 넘었을 때 일본 언론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자신들의 실력보다 한 수 낮은 한국에서 나온 기록이 뭐 그리 대단하냐는 식이었다.
이승엽 본인도 1일 한신전이 끝난 뒤 사실 한국에서 324개를 때리고 일본에서 77개를 쳤는데 일본 언론과 팬이 한국에서의 기록을 인정할 것인가가 마음에 걸린다고 솔직히 털어놓았다.
하지만 이승엽의 걱정은 기우였다. 그는 어느새 한일 양국의 영웅이 되어 있었다.
2일 일본 언론은 전날 한일 통산 400홈런 달성과 함께 극적인 끝내기 홈런으로 401호를 장식한 이승엽의 활약을 대서특필했다. 지난달 25일 시즌 30홈런을 쳤을 때와 비교해도 하늘과 땅 차이의 변화였다.
스포츠호치 1면에는 일한 400호-사요나라 401호라는 제목과 함께 9회 끝내기 홈런을 친 뒤 두 팔을 번쩍 치켜든 이승엽의 사진이 대문짝만 하게 실려 있었다.
산케이스포츠는 이날만은 이승엽의 얼굴이 여유 있었다며 오 사다하루, 알렉스 로드리게스(뉴욕 양키스)에 이어 역대 세 번째로 20대에 400홈런을 달성하며 세계 최고의 강타자들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는 점을 강조했다. 특히 4안타만 내주며 호투했지만 이승엽에게 투런 홈런 2방을 맞아 패전투수가 된 한신 에이스 이가와 게이가 경기 뒤 손을 떨 정도로 분을 이기지 못했다는 내용도 함께 전했다.
종합일간지도 이승엽의 대기록을 비중 있게 다뤘다.
아사히신문은 빈타에 허덕이는 요미우리에서 이승엽이 고군분투했다. 혼자서 팀 연패를 막았다며 이승엽을 치켜세웠다.
1면 메인사진으로 이승엽을 내세운 요미우리신문도 400호를 친 뒤 베이스를 돌면서도 경기에 집중하기 위해 표정이 변하지 않았다고 극찬했다.
일부 언론은 400홈런 기록을 세운 이승엽에게 요미우리 그룹이 특별 포상금 1000만 엔(약 8500만 원)2000만 엔(약 1억7000만 원)을 지급할 것으로 보인다고 보도했다.
한편 이승엽이 20대의 나이로 400홈런 고지를 밟으면서 그가 앞으로 몇 개의 홈런을 더 쳐낼 수 있을지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5311타수 만에 400홈런 고지에 도달한 이승엽의 홈런 페이스는 13.3타수당 1개꼴. 현역 선수 가운데 단연 세계 최고다. 다만 이승엽의 홈런 페이스는 오 사다하루에게는 뒤진다. 1969년 시즌 마지막 홈런으로 400홈런을 달성한 오 사다하루는 그때까지 4606타수에 지나지 않아 11.5타수마다 대포를 쏘아 올린 것이었다.
이승엽의 페이스로 볼 때 오 사다하루의 통산 868홈런은 힘들어 보이지만 메이저리그 최고인 행크 애런(755홈런16.4타수당 1개)의 기록은 조심스럽게 넘볼 수도 있어 보인다.
이승건 wh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