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은 27일 가급적 그런 일(당적 포기)이 없도록 노력하겠지만 그 길밖에 없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고 했다.
25일 당정청 4인 회동에서 열린우리당 김근태 의장이 당과 한 몸으로 갈지 중립내각으로 갈지 12월9일까지 결론을 내려달라고 했고 27일 청와대 초청 만찬까지 거부한데 대한 답변이다. 중립내각은 대통령 탈당을 전제로 하는 것이니, 결국 김 의장의 발언은 우회적인 탈당 요구였고 이에 노 대통령은 그렇다면 탈당도 생각하겠다고 대답을 한 것.
노 대통령이 즉각 탈당을 염두에 두고 있는 지는 확실치 않으나 현재의 당청 관계로 볼 때 결국 열린우리당과의 관계가 정리되는 쪽으로 가닥이 잡힐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청와대, 열린우리당에 밀려서 나온 발언=노 대통령은 27일 오전 열린 청와대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효숙 헌법재판소장 후보자 건도 그렇고 293개 법안이 국회에 계류돼 있는데 (당이) 이를 처리도 안 해주고 나보고 뭘 하라고 하는 거냐며 당적 포기 얘기를 꺼냈다고 한다.
당시 참석자들은 이 발언을 말렸으나 노 대통령은 뒤이어 열린 국무회의에서 당적 포기 시사 발언을 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김 의장이 네 번 청와대 면담을 요청했는데, 의제가 중립내각 구성할 지 말지의 문제였다. 사실상 노 대통령에게 탈당 할 거냐 말 거냐를 놓고 담판을 짓자는 것인데 어떻게 만날 수 있느냐고 말했다. 대통령 당적 포기 발언의 원인이 김 의장에게 있다는 지적이다.
이 관계자는 열린우리당 김 의장과 김한길 원내대표, 한명숙 국무총리, 이병완 대통령비서실장의 4자 회동이 이뤄졌는데 김 의장이 10분 만에 12월9일까지 결론을 내려 달라는 얘기를 하고 밥도 안 먹고 가버렸다고 한다. 이런 상황에서 노 대통령이 무슨 말을 할 수 있다는 말이냐고 전했다.
당이 이렇게 압박하는 상황에서 대통령이 버티는 것도 한계가 있지 않느냐는 게 그의 설명이다.
대통령 탈당하면 당청관계는 원수?=열린우리당에서는 대통령이 탈당해도 스스로의 결단으로 포장해야 한다는 데 이론이 없다. 레임덕에 처한 대통령을 삿대질하며 살 길을 찾는 모양새는 공감대를 얻기 힘들다는 판단에서다.
하지만, 상황이 그렇게만 흘러가지는 않을 듯하다. 당장 청와대가 대통령의 당적 포기시사 발언이 열린우리당의 강요에 의해 나온 것이라고 배경설명을 하고 있다. 열린우리당 내 친노 의원들은 탈당 자체에 대해 반대하고 있다.
이 때문에 대통령의 탈당 문제가 여권의 내홍으로 비화할 가능성이 있다. 친노 의원들은 임기 말만 되면 대통령을 공격하는 유행병이 도지지 않았으면 좋겠다며 당 지도부의 자제를 촉구했다.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노 대통령이 탈당하는 방향으로 당청 관계가 흘러갈 공산이 크지만 여전히 상황은 유동적이다며 그러나 현재의 감정대립 상황에서 대통령이 탈당하면 당과 대통령의 관계는 돌이킬 수 없게 되고, 정국은 전혀 새로운 구도로 재편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중립내각 모색 가능성=노 대통령에게 남은 정국 운용 카드는 바닥이 났다. 여야정 정치협상 제안은 한나라당으로부터 거부됐고, 당청 관계는 꽉 막혀 있다.
이 때문에 노 대통령이 당적 포기를 통한 중립내각 구성을 검토할 가능성이 거론된다. 그러나 그렇게 한다고 해도 한나라당이 선선히 협조할 분위기는 아니다. 얼마 전 노 대통령은 중립내각이든 거국내각이든 여야가 합의해 오면 검토하겠다고 했으나, 한나라당은 중립적인 인사를 기용해 정국을 운영하면 된다고 거부한 바 있다. 노 대통령이 어떤 카드를 제시해도 정치권의 신뢰를 얻기 힘든 상황이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실제 노 대통령이 탈당하고, 진짜 중립내각을 구성하는 성의를 표시한다면 한나라당도 노 대통령에 대해 부분적인 협조를 할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정치권에서는 역대로 현직 대통령이 극력 반대하는 대선후보가 대통령이 된 적은 없다. 한나라당 후보들도 이점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는 말이 나온다.
열린우리당으로서는 김 의장이 제시한 탈당 선택 시한인 12월 9일을 기점으로 정계개편 문제를 본격 논의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 당장 고건 전 국무총리가 12월 중순 정계개편에 동의하는 제 세력의 원탁회의를 제안한 만큼 여기에 참여할 것인지, 당을 해체할 것인지 말 것인지, 친노 세력과의 함께 할 것인지 등을 놓고 새판짜기를 위한 움직임이 본격화할 전망이다.
정용관 yongar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