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우리당이라는 둑의 붕괴는 의외의 곳에서 시작됐다.
통합신당파도 아니고 탈당을 시사하지도 않았던 임종인 의원은 22일 당의 보수화를 비판하며 독자 탈당을 선언했다. 임 의원은 참여정부와 열린우리당의 노선이 한나라당과 다르지 않다. 서민과 중산층을 제대로 대변하는 개혁정당을 만들어 한나라당의 집권을 막겠다고 탈당 이유를 밝혔다.
임 의원의 탈당은 신당파의 탈당 움직임과는 전혀 다른 맥락. 그러나 탈당에 부담을 느껴온 신당파 의원들의 심리적 저지선을 무너뜨리는 효과가 있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29일 중앙위원회에서는 통합신당파와 당 사수파가 첨예하게 맞서 있는 당헌 개정안(기간당원제 폐지 및 대의원 선출 요건 완화) 통과를 위한 절충이 벌어지게 된다. 하지만 당내에서 여기에 기대를 거는 사람은 많지 않다.
당헌 개정이 무산되면 당 지도부인 비상대책위원들이 모두 사퇴하고, 당은 자연스럽게 와해 국면으로 치달을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탈당 명분도 생긴다. 당 주변에선 분당()이 가시권에 접어들고 있다는 얘기와 함께 각종 시나리오도 나온다.
선도탈당의 두 가지 흐름=29일 당 중앙위의 결정이나 214 전당대회 일정과 무관하게 일부가 먼저 선도탈당을 감행할 여지가 있다.
우선 천정배 의원의 움직임이 주목된다. 개혁 성향의 천 의원이 수도권 초재선 의원들과 함께 제3지대로 나가 민주당 일부 및 정치권 밖의 개혁세력과 연대해 통합신당의 모태를 만든 뒤 다른 세력을 끌어들인다는 시나리오가 나온다.
그러나 천 의원의 깃발 아래 과연 몇 명의 의원이 모일지가 관건이다. 적어도 10명, 많게는 원내교섭단체(20석 이상)를 구성할 수 있는 정도의 의원을 규합해야 하는데 여의치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천 의원은 당을 사수할 분들과 신당으로 가야 할 분들이 사이좋게 헤어져서 각자의 길을 가면서 선의의 경쟁을 하고 결국은 같은 길로 다시 연합하는 방법이 오히려 현실적이지 않나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부겸 최용규 조배숙 정장선 의원 등 일부 재선 의원이 먼저 치고 나가는 시나리오도 돌고 있다. 이들이 민주당 및 한나라당 내 개혁성향 의원들과 함께 이념적으로 중도 선진화를 지향하는 정치 세력을 만든다는 것.
통합신당파의 기류=우선 신당파 의원들이 한꺼번에 움직이는 시나리오가 있다. 29일 중앙위 결과에 따라 당 사수파와의 결별 명분을 내세워 김근태 의장과 정동영 전 의장, 천정배 의원, 김한길 원내대표, 초재선 의원, 호남 의원 등이 모두 탈당을 결행할 수 있다는 것.
이는 오래전부터 나온 시나리오지만 사정상 결행이 미뤄져 왔다.
김 의장은 당 지도부로서 가능한 한 전당대회까지 책임지고 치러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먼저 깃발을 들 수 없는 처지다. 정 전 의장과 천 의원 등이 탈당을 감행할 경우 이들을 따라갈지 말지를 고민해야 하는 상황이다. 또 강봉균 정책위의장 등 일부 당내 보수 성향 의원과는 신당의 정체성 문제를 놓고 갈등을 빚을 가능성도 있다.
이 때문에 분당 과정에서 김근태 의장계와 정 전 의장 중심의 중도 진영이 갈라설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정책 노선상으로만 보면 김 의장과 천 의원이 같은 배를 탈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이목희 전략기획위원장이 대거 탈당 사태가 오면 소수가 열린우리당에 잔류하고, 나가는 분들 중에서는 개혁적 색채가 강한 분과 보수적 색채가 강한 분들이 함께 하기는 어려울 것이다고 말한 것도 그런 맥락이다.
독자 탈당 움직임=신당파 의원의 상당수는 좀 더 지켜보자는 태도다. 유선호 의원은 29일까지 사수파를 설득해 보고 안 되면 탈당을 포함해 중대 결심을 하겠다고 했다. 신당 강경파로 분류되는 양형일 의원도 지금 당장 탈당 움직임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계안 의원은 이미 탈당계를 작성해 놓고, 지역구 핵심 당원들에게 탈당 결심을 통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중국에서 귀국한 염동연 의원도 탈당을 예고한 바 있다.
정용관 장강명 yongari@donga.com tesomio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