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인 10일 오후 11시. 서울 지하철 2호선 동대문운동장역 부근. K산악회라고 앞 유리에 써 붙인 45인승 관광버스가 시동을 켠 채 출발을 기다리고 있었다.
40, 50대가 주류를 이르는 남녀 40명이 차에 오르자 산악회 대표가 회비(3만5000원)를 걷으며 일정을 소개했다.
이번 백두대간 종주는 14km, 약 7시간 일정입니다. 국립공원관리공단은 우리의 종주 코스가 불법이라며 산행을 하지 말라고 합니다만, 백두대간 종주는 일제에 빼앗긴 민족혼을 되찾는 우리의 사명입니다.
같은 시간, 충북 제천시 국립공원관리공단 월악산 사무소. 장상덕(47) 자원보전팀장이 팀원 8명을 소집했다.
내일 날씨가 좋아 출입 금지 구역인 벌재차갓재 구간에 들어올 산악회가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쫓고 쫓기는 추격전
이날 월악산 관리공단팀이 인터넷에서 등반로를 사전에 파악하고 따라나서기로 한 K산악회가 충북 단양군 저수령 휴게소에 도착해 산행에 나선 시간은 11일 오전 4시 50분.
오전 7시 제천시 한수면의 국립공원 관리공단 월악산 사무소에 모인 단속팀 8명은 출입 금지 구역 시작점인 벌재부터 K산악팀을 뒤쫓는 단양팀과 등반 종점인 차갓재부터 벌재를 향하는 월악팀으로 나뉘어 이뤄졌다.
오전 7시 반 벌재 앞 공터에 모인 K산악회원들은 라면과 소주로 아침을 때운 뒤 출입 금지 입산통제 안내라고 쓰인 플래카드 사이를 걸어 황장산을 향해 불법 산행을 시작했다.
오전 8시. 벌재에 나간 단양팀에서 무전이 왔다. 산악회들이 생각보다 일찍 산에 올랐거나 안 온 것 같다.
이때부터 단속팀은 걸음을 빨리했다. 종주산행 종점인 차갓재를 향하던 월악팀은 차갓재 아래에 주차돼 있는 K산악회 버스를 지나쳐 뛰다시피 산을 올랐다. 단양팀 역시 벌재를 떠나 차갓재를 향해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낮 12시. 단속반은 작은 차갓재 옆 헬기장에서 길을 막고 K산악회 본진 30여 명을 자연공원법 위반 혐의로 단속했다.
단속반의 장윤봉(39) 팀장은 원칙대로라면 회원 40명 전원에게 과태료 50만 원씩을 매겨야 하지만 모르고 따라온 일반 회원들은 당분간 예외로 한다며 가이드 2명에게만 과태료를 부과했다.
K산악회의 B 대장은 황장산 부근 마지막 갈림길에서 뒤처진 회원 3명과 하산을 시작했다. 뒤따라오는 단속팀을 따돌리기 위한 사실상의 도주였다. 길도 없는 숲 속에서 도망가는 것도 아니고 함께 가는 것도 아닌 어색한 추격전이 20여 분간 계속됐다.
하지만 단속팀이 끝까지 따라붙으며 자꾸 이러면 4명 모두에게 과태료를 물리겠다고 엄포를 놓자 이 사람들은 죄가 없다며 B 대장이 자신의 신분증을 내놓았다.
B 대장은 단속을 당하면서도 백두대간을 종주하는 것은 한국인으로서 꼭 해야 할 일이라며 앞으로도 종주를 계속하겠다고 말했다.
단속반의 장 팀장은 백두대간 종주와 애국심은 전혀 상관이 없다며 진정한 애국자라면 후손에게 물려줄 자연과 생태계를 보호하는 데 앞장서야 할 것 아니냐고 맞받았다.
본보 취재팀이 월악산에서 K산악회, 단속팀과 함께 취재를 한 8시간 동안에만 3개 팀 120여 명이 단속됐다. 공단 관계자는 인터넷 사전 계도로 불법 종주가 많이 줄기는 했지만, 근절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며 등산객들의 의식 전환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인터넷으로 불법 등반 감시 시작
요즘 주말이면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전국의 유명 산들에서 이런 추격전이 벌어진다. 국립공원 관리공단이 불법 등산로로 산행을 하는 산악회들을 단속하기 때문.
공단은 2월 8일부터 인터넷에 홈페이지를 운영하고 있는 전국 1000여 개 산악회가 사전에 공지하는 종주 코스를 일일이 검색해 코스 중 출입 금지 구간이 포함돼 있으면 코스를 바꾸거나 일정을 취소하라고 공문을 보내고 있다. 연락을 받고도 산행을 강행하거나 미처 공지사항을 확인하지 못한 산악회, 온라인 동호회를 운영하지 않고 불법 종주를 하는 산악회는 현장에서 제지한다.
나성엽 이설 cpu@donga.com snow@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