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보는 4개월여 동안의 현장 취재와 수십 명에 이르는 국내외 법률전문가 인터뷰를 통해 미국법의 배경과 영향력을 살펴봤다. 미국의 노련한 기술과 거대한 몸집, 엄청난 판돈을 비난하고 반대하기 전에 게임의 규칙을 이해해야 할 때이기 때문이다. 우리도 게임에 뛰어들 준비를 서둘러야 한다. 게임은 이미 시작됐다.
2일 타결된 한미 FTA 조문은 상당 부분 작성돼 있는 상태다. 부분적인 수정을 거쳐 올 6월 30일 이전에 모두 공개된다.
협정문은 국문본과 영문본 모두 정본으로 인정된다. 한국이나 미국 어느 쪽도 특별히 유리하지 않다. 공식적으로 FTA는 한국과 미국의 평등한 조약이기 때문이다.
한국 협상단은 협상기간 내내 미국 로펌인 스텝토 앤드 존슨(Steptoe & Johnson)의 변호사 3명과 샌들러 트래비스 앤드 로젠버그(Sandler, Travis & Rosenberg)의 변호사 4명에게서 조언을 받아 왔다.
반면 미국 측 협상단은 우리처럼 한국법에 대한 조언을 받지는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한미 FTA 이후 양국 간 게임의 규칙이 무엇인지를 짐작케 하는 대목이다.
4일 법무부는 한미 FTA 후속 조치의 하나로 앞으로 형사 절차에서 상업적 규모 이상의 지식재산권 침해 사건에 대해서는 권리자의 고소가 없어도 처벌이 가능하도록 제도를 정비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현행 법 체계에서 지식재산권 침해는 모두 친고죄다. 반면 영미법에서는 친고죄 개념이 없다. 이는 FTA라는 통합의 게임에서 미국법이 두 나라의 법률적 표준으로 관철된 대표적 사례다.
법무부는 상업적 규모의 기준에 대해선 우리 실정에 맞게 적절히 수립할 방침이며 앞으로 소규모 침해사건은 형사처벌 대상에서 제외해 민사 절차로 해결하도록 하고, 크고 중요한 침해사건만 형사처벌 대상으로 삼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설명했다.
이뿐만 아니다. 이번 한미 FTA 타결에 따라 앞으로 저작권 보호 기간이 종전에 저작자 사후 50년이던 것이 70년으로 늘어났다. 제도 시행이 2년 유예되긴 하지만 미국이 1998년 만든 소니보노법이 한국 시장에 적용되는 것이다.
노동 분야의 공중의견제출제나 환경 분야의 대중참여제 등이 도입되는 것도 미국식 표준에 맞춰 우리의 제도와 법률을 정비해야 하는 사례에 속한다.
통상 전문가들은 FTA를 체결한 두 나라의 게임 규칙이 동일하다는 것은 법규와 시장의 광범위한 통일을 뜻한다고 말한다. 특정 산업의 수입 개방이나 관세 철폐와는 비교할 수 없는 규모의 동질화가 이뤄지는 것이다. 심지어 투자분쟁의 해결 절차까지 공동으로 규정한다.
FTA 등을 통한 세계시장 통합의 이면에는 법률의 산업화, 나아가 법률산업의 세계화와 미국법의 세계시장 지배라는 거대한 물결이 관통하고 있다. 제4의 물결로까지 불리는 글로벌 법률산업의 무한경쟁 시대에 한국이 게임에 뛰어들기 위해서는 미국법을 자본시장의 규칙으로 성장시킨 토대가 된 메가로펌의 생존경쟁 원리 글로벌 기업의 거대 법무조직 변화하는 미국 로스쿨 등에 대한 철저한 이해와 함께 대비책 마련이 절실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지성 장택동 verso@donga.com will71@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