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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남은 자의 슬픔

Posted June. 07, 2007 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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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가까이 동고동락한 동생들을 놔두고 저만 살아 돌아와서 고개를 들 수가 없습니다.

세계적인 산악인이자 탐험가인 박영석(44골드윈코리아 이사동국대 산악부 OB) 씨. 6일 서울 성북구 하월곡동 세계탐험협회 사무실에서 만난 그는 이 말부터 꺼냈다.

지난달 16일 박 씨가 이끌던 2007 에베레스트 남서벽 원정대의 오희준(37서귀포 영천산악회), 이현조(35전남대 산악부 OB) 대원은 에베레스트 남서벽 해발 7700m의 캠프4에서 눈사태를 맞아 1200m를 추락한 끝에 유명을 달리했다.

오 씨는 1997년부터, 이 씨는 1999년부터 박 씨와 히말라야 등반과 극지 탐험을 함께한 동지들. 2000년부터는 기러기 아빠가 된 박 씨의 집에서 함께 지낸 가족이나 다름없는 사이였다.

지난달 27일 새벽 두 대원의 유골을 안고 귀국한 박 씨는 처음엔 죄인인 내가 무슨 할 말이 있겠느냐며 한사코 인터뷰를 마다했다.

거듭된 설득 끝에 조심스레 말문을 연 박 씨는 예전의 그가 아니었다. 1% 가능성만 있어도 절대로 포기하지 않는다던 자신감 넘치는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무척 약해 보였다.

박 씨는 속죄의 뜻으로 베이스캠프에서 스스로 머리카락을 밀어 버렸다. 그때 뭔가 하지 않고서는 미쳐 버릴 것만 같았다고 했다. 그는 사고가 난 날부터 보름 가까이 곡기를 끊고 흐느껴 주위 사람들을 안타깝게 하기도 했다.

체중이 20kg은 빠졌고 네팔에서 혼절과 각혈도 여러 번 하는 바람에 지금도 불안하기 짝이 없다며 옆에 있던 이형모 대원이 귀띔해 줬다.

정말 기가 막혔어요. 이제 현역에서 물러나야겠다고 생각했죠. 히말라야 8000m 이상 고봉 원정 34번째 만에 동료 9명을 산에 묻었어요. 그런데 장례 치르고 곰곰이 생각하니 이대로 주저앉아서는 안 되겠다, 동생들 몫까지 살아 뭔가 의미 있는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박 씨는 재단을 설립해 오희준 이현조 대원의 이름을 붙인 장학금을 만들 생각이라고 했다.

이번 등반이 너무 무모했다는 평가도 있는데라고 그가 아파할 만한 질문을 던졌다.

그러자 정말 어려운 등반이었다. 하지만 어렵지 않으면 도전할 이유도 없었다. 두 대원 모두 의미 있는 등반이라고 무척 좋아했다. 진정한 산악인들이었다. 내년에 다시 준비해 도전할 것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박 씨는 7월 8일부터 27일까지 19박 20일 동안 대학생들과 부산에서 충북 충주시를 거쳐 서울까지 약 530km 국토순례를 할 계획이다. 2004년부터 그가 대장을 맡아 매년 해 온 대한민국 문화원정대 얘기다.

그는 올해엔 포기할까도 생각했지만 한번 멈추면 다시 시작할 수 없다. 지난 3년간 행사를 하면서 처음엔 자신만 생각하던 학생들이 완주 무렵엔 변하는 것을 보고 느낀 점이 많았다고 했다. 그는 지금까지 마련한 행사 비용이 턱없이 모자라지만 주머닛돈을 털어서라도 행사를 진행해 젊은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심어 주고 싶다며 새로운 출발의 의지를 다졌다.



전창 je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