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명예 기록만 남긴 사학법=2005년 12월 사학법 개정 때 열린우리당은 한나라당이 불참한 가운데 국회의장 직권상정이란 무리수를 동원했다.
2006년 1월 열린우리당 의장이었던 유재건 의원은 개정 사학법은 일점일획도 고칠 수 없다고 했고, 당시 국회 교육위원회 열린우리당 간사였던 정봉주 의원은 사학법은 열린우리당의 뇌수와도 같다고 했다.
정치권은 물론 각계에 보혁() 논쟁을 일으킨 사학법은 결국 1년 6개월여 만에 국회의장 직권상정을 통해 다시 고쳐지게 됐다. 열린우리당 의석이 152석에서 73석으로 반 토막 난 데다 대선을 앞두고 사학법 개정을 요구하는 종교계 등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으로 풀이된다. 결국 사학법은 두 차례의 법 개정 과정에서 두 차례의 국회의장 직권상정과 국회의원 몸싸움 기록만 남기게 됐다.
개방형 이사 규정만 남아=이번 사학법 재개정의 핵심은 개방형 이사 선임 방식의 변화다. 2005년 12월 공포된 개정 사학법은 학교운영위원회가 이사의 4분의 1을 2배수 추천하면 이들 중 재단이 임명하게 하고 있다.
하지만 이번에 합의된 재개정안은 이전보다 사학의 영향력을 크게 했다. 개방형 이사 추천위원회를 구성하고, 추천위원은 재단과 학교운영위원회가 추천하되, 일반 사립학교는 학운위가 과반수를 추천하고, 종교인을 육성하는 대학(원)은 재단 측이 과반수를 고른다.
개정법은 또 이사장이 다른 학교 교장이나 이사장을 겸직할 수 있도록 했다. 교장의 임기도 지금은 두 번까지만 할 수 있지만 이런 제한도 풀렸다.
개방형 이사제를 존립시킨다는 명분 하나만을 남긴 셈. 나머지는 모두 2005년 12월 이전으로 원상회복된 것이나 다름없다. 애초 개혁 도그마에 빠져 학교 현실을 외면한 채 무리하게 법안을 강행 추진한 데에서 비롯됐다는 지적이 많다.
개혁 입법의 어제와 오늘=열린우리당이 17대 총선에서 탄핵 역풍에 힘입어 과반 의석을 차지한 직후 첫 원내대표였던 천정배(현 민생정치모임 소속) 의원은 4대 개혁입법 관철을 전면에 내걸었다.
그러나 국가적 논란을 불러일으킨 국가보안법은 결국 아무것도 손대지 못하고 흐지부지됐다. 신문법 제정안은 우여곡절 끝에 2005년 국회를 통과했으나 헌법재판소는 2006년 6월 한 신문사의 시장점유율이 30% 이상이거나 3개 신문사의 점유율이 60%를 넘으면 시장지배적 사업자로 규정한 조항에 대해 위헌 결정을 내렸다. 과거사법은 2005년 여야 합의로 국회를 통과했지만 공소시효 등을 둘러싼 위헌 논란이 여전하다.
열린우리당 의장을 두 번이나 지낸 정동영 전 의장은 2006년 11월 기자간담회에서 열린우리당이 실패한 이유에 대해 열린우리당에 4대 개혁입법의 모자를 씌운 것이 잘못됐다고 토로했다.
조수진 jin0619@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