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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진 금융기법들 도입은커녕 주도권만 넘겨줘

선진 금융기법들 도입은커녕 주도권만 넘겨줘

Posted November. 15, 2007 0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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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말 외환위기가 한국 경제를 강타하자 정부는 이를 극복하기 위해 금융 기업 노동 공공 등 4대 부문의 개혁 프로그램을 내놓았다.

기업들의 뼈를 깎는 구조조정과 국민들의 고통 분담 덕택에 한국은 2001년 8월 국제통화기금(IMF)의 관리체제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하지만 제일은행 매각 사례에서 보듯 숱한 시행착오를 겪어야 했다. 이 같은 시행착오는 외환위기의 후유증으로 남아 아직까지도 국민 경제의 큰 짐이 되고 있다.

BIS비율 8% 아직 논란

외환위기 직후 금융시장이 누적된 부실과 신용경색으로 제 기능을 하지 못하자 김대중 정부는 강도 높은 구조조정에 들어갔다. 명분은 효율적 금융시스템 구축이었다.

구조조정의 결과 국내 금융회사는 1997년 말 2103개에서 올해 6월 1304개로 줄었다. 10년 동안 금융회사의 3분의 1이 사라진 셈이다.

은행의 구조조정은 다른 금융권에 비해 훨씬 혹독했다. 국제결제은행(BIS) 기준 자기자본비율이 8%에 미달하는 은행은 강제 퇴출되거나 합병 대상으로 전락했다.

이에 따라 일반은행의 BIS 자기자본비율은 1997년 7.04%에서 지난해 12.31%로 크게 개선됐고 부실채권 비율이 6.70%에서 0.84%로 대폭 낮아지는 등 건전성도 향상됐다.

하지만 유동성 위기가 심각했던 시기에 BIS 자기자본비율을 지나치게 엄격하게 적용한 것은 여전히 논란이 되고 있다.

한 민간 경제연구소의 연구원은 은행의 성장 가능성이나 유동성 비율 등 여러 가지 판단 기준이 있었을 텐데 BIS 자기자본비율이 구조조정의 유일무이한 잣대가 된 것은 지금도 아쉽고 의문스러운 대목이라고 말했다.

글로벌 스탠더드 열풍에 휘말려 국내 은행산업의 주도권을 외국 자본에 넘겨준 것도 대표적인 시행착오 중 하나다.

제일은행 외에 칼라일펀드로 넘어갔던 한미은행(이후 씨티그룹으로 흡수), 론스타펀드에 넘겨준 외환은행 등의 사례는 국부() 유출 논란까지 불러일으켰다.

기업지배구조는 개선, 역동성은 상실

대기업의 방만한 차입 경영과 문어발식 확장 경영은 한국을 외환위기에 빠뜨린 큰 원인으로 꼽힌다.

정부는 이에 따라 1998년 초 대기업들을 향해 선단()식 경영의 종식을 주문하고 나섰다. 대기업들의 중복 또는 유사 사업을 주고받는 식으로 통폐합했던 빅딜이 이뤄진 것도 이 때문이다.

이듬해에는 산업자본과 금융자본 분리 순환출자 및 부당 내부거래 억제 변칙상속 차단 등 기업지배구조 개선을 요구했다.

기업들은 부실 자산과 사업을 과감히 정리하고 선택과 집중을 통해 주력 사업을 키우는 등의 자구 노력으로 수익성과 건전성 측면에서 상당한 성과를 거뒀다.

또 순환출자에 비해 지배구조가 비교적 단순한 지주회사로 전환한 기업이 올해 8월 말 현재 40개에 이르는 등 지배구조도 상당히 개선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냉탕과 온탕을 오가는 식의 정책 혼선도 적지 않았다.

1999년 말 기업 구조조정을 촉진한다는 이유로 출자총액제한제도를 폐지했다가 2001년 4월 경제력 집중을 억제해야 한다는 이유로 부활시킨 게 대표적이다. 정부는 지배구조를 개선한다는 명분으로 이 제도를 고수하고 있지만 기업의 사업 다각화와 투자를 가로막는 걸림돌로 지적되고 있다.

김대중 정부가 외환위기를 극복하는 방안으로 외자 유치를 지나치게 강조한 이후 현 정부에 이르기까지 국내 기업에 대한 역차별 논란도 계속되고 있다.

삼성경제연구소에 따르면 2005년 말 현재 1조 원 이상 매출을 올리는 외국계 기업 20개 가운데 13개(65%)는 당초 국내 자본이었다가 외환위기 이후 해외에 팔린 기업이다.

끝나지 않은 구조조정

정부가 1997년 11월부터 올해 9월까지 투입한 공적자금은 168조4000억 원에 이른다.

하지만 지금까지 회수된 자금은 89조1000억 원(52.9%)에 그칠 정도로 외환위기가 남긴 상처는 여전히 깊고 넓다.

특히 당초 정부가 내세웠던 4대 부문 개혁 가운데 금융과 기업을 제외한 노동 및 공공 부문은 변변한 실적이 없어 개혁이 아닌 퇴보라는 지적까지 받고 있다.

한국경제연구원 허찬국 경제연구본부장은 공공과 노동 부문의 개혁은 실질적 진전을 찾아보기 어려운 데다 일부에서는 과거 회귀적 모습까지 보인다며 외환위기를 진정으로 극복하기 위해서는 두 부문에 대한 개혁을 서둘러야 한다고 강조했다.

삼성경제연구소 황인성 수석연구원도 14일 내놓은 외환위기 10년의 평가와 과제 보고서에서 노동 부문은 유연성이 외환위기 이전에 비해 크게 개선되지 못했으며 일자리 창출 부진 등 노동시장의 활력도 저하됐다며 합리적인 노사관계를 정립하는 동시에 노동 부문의 유연성을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차지완 ch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