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가()에서는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고 한다. 그런데 그 옷깃을 한 번 스치려면 전생에서 3000번의 인연이 있어야 한다고 한다. 김영삼(YS) 전 대통령은 1993년 2월 일면식도 없던 이회창 대법관을 감사원장에 앉히면서 그와 인연을 맺는다. 두 사람은 그렇게 양연(좋은 인연)으로 출발했다. 그러나 감사원장을 거쳐 국무총리에 기용된 이 씨가 127일 만에 권한 행사에 불만을 표시하며 전격 사퇴하면서 둘 사이는 틀어지기 시작한다.
그래도 YS는 1996년 4월 총선 직전 이 씨를 신한국당 선대위 의장으로 영입함으로써 그에게 정치의 길을 열어 준다. 이 씨가 거물 정치인으로 우뚝 설 수 있게 된 것도 YS 덕분이었다. 대선을 1년 이상 앞둔 그해 8월 당내에서 이른바 9룡()의 대권 경쟁이 치열할 때 YS는 이 씨를 겨냥해 독불장군에겐 미래가 없다고 경고한다. 이에 이 씨는 몸을 낮추기는커녕 비민주적 정당에는 미래가 없다고 오히려 보스를 향해 항명의 깃발을 치켜들었다.
두 사람의 관계가 결정적 악연()으로 바뀐 것은 1997년 10월경이다. 대선 후보인 이 씨는 두 아들의 병역비리 의혹으로 지지율이 곤두박질치자 김대중 국민회의 후보의 비자금 의혹을 반전() 카드로 빼든다. 그러나 도와줄 줄 알았던 YS는 공정한 대선 관리를 이유로 김태정 검찰총장을 불러 수사를 대선 이후로 연기하라고 지시한다. 이에 이 씨는 YS의 탈당을 요구하고, 심지어 이 씨 지지자들이 경북 포항시에서 YS 마스코트 화형식까지 하자 YS는 대선을 40여 일 앞두고 탈당한다. 이 씨는 그해 대선에서 낙선했다.
세 번째 대선에 출마한 이 후보를 향해 YS는 22일 자신이 몸담았던 정당과 후보에게 비수를 들이대고 있다면서 먼저 인간이 돼라고 독설을 날렸다. 72세나 된 대통령 후보에게 인간이 돼라고 일갈한 전직 대통령 쪽에 더 문제가 있을까, 아니면 자신을 두 번이나 대선 후보로 만들어 준 당을 팽개친 뒤 그 당의 공식 후보를 폄훼하기에 바쁜 이 후보의 자업자득()일까.
이 진 녕 논설위원 jinny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