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 나 이쪽으로 뜬다 어, 알았어 형, 난 이쪽 야, 이번엔 속공이야.
배구 코트에서 서브가 이뤄지는 상황에선 양 팀 선수들의 손가락이 바쁘다. 등 뒤나 엉덩이 뒤, 혹은 옆구리 밑으로 은밀하게 손가락으로 각종 사인을 보낸다. 리시브 하는 팀은 다음 공격을 위해, 서비스 하는 팀은 상대가 어느 쪽으로 공격할지를 예상하고 그쪽으로 움직이겠다는 수신호를 보낸다. 상대가 알아들을까 봐 말은 안 하지만 자신들이 어떻게 움직일지를 손가락으로 말하는 것이다.
세터의 볼 배급으로 좌우 오픈 공격은 물론 각종 속공, 백어택 등이 톱니바퀴처럼 조직적으로 만들어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몸싸움이 심한 축구나 농구와 달리 6명이 하는 네트 종목 배구는 일종의 짜인 각본이 필요하다. 상대의 움직임을 읽고 허를 찌르는 플레이를 하려면 순간적인 판단을 하고 아군에게 다음 공격 루트를 알려 주지 않으면 실수가 나오기 일쑤다.
코트에서 사인은 주로 세터와 공격수, 리베로가 보낸다. 세터는 리시브한 볼이 어느 쪽으로 흐르느냐에 따라 좌우 오픈, 시간차, 속공, 백어택이 이뤄질 방향을 지시한다. 공격수들은 세터의 사인에 따라 나는 왼쪽 나는 중앙 백어택 나는 중앙 시간차를 알리며 세터가 볼을 띄울 때 그쪽으로 점프하겠다는 수신호를 보내는 것이다. 흥국생명의 특급 공격수 김연경은 서로의 움직임을 수신호를 통해 알고 있기 때문에 세터가 볼을 어떻게 올려도 실수할 일은 없다고 말한다.
리베로는 아군이 서브를 넣을 때 사인을 보내는데 쟤가 리시브가 약해라고 서브의 방향을 지시한다. 리베로가 수비 전문이기 때문에 서브 리시브가 불안한 상대 선수를 잘 파악하고 있기 때문이다. 센터는 블로킹의 방향과 속공 참여 여부를 손가락으로 말한다. 김호철 현대캐피탈 감독은 상황에 따라 벤치에서 전술을 바꾸는 사인을 보낼 때도 선수들은 수신호로 바로 전술을 수정한다고 말했다.
가끔 볼이 엉뚱하게 올라가 스파이크를 때리지 못하는 경우는 서로 사인이 엇갈렸기 때문이다. 배구의 짜임새 있는 조직력은 바로 수신호가 만들어 내고 있는 것이다.
양종구 yjong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