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이 하늘(1975년)이라고 한 사람은 시인 김지하였다. 그는 하늘을 혼자 못 가지듯 밥은 서로 나눠 먹는 것이고 하늘의 별을 함께 보듯 밥은 여럿이 갈라 먹는 것이라면서 독점경제에서 소외된 민중을 대신해 밥을 나눠 달라고 외쳤다. 1980년대 노동운동의 상징이던 시인 박노해는 밥줄이 하늘이라고 했다. 우리 세 식구 밥줄을 쥐고 있는 사장님도 하늘이요, 프레스에 찍힌 손을 붙일 수도 병신을 만들 수도 있는 의사 선생님도 하늘이라면서 서로가 서로에게 푸른 하늘이 되는 그런 세상을 꿈꿨다.
산다는 것을 한마디로 줄이면 밥을 먹는 것이라고 볼 수도 있다. 삶이 힘겹다는 것은 밥 벌어 먹고사는 일이 그만큼 어렵다는 것이다. 가난하던 시절에는 배고파 죽는 일도 흔했다. 오죽했으면 시인 김영석은 밥을 보면 무덤이 생각난다고 했을까. 소학교 마을 뒷산의 한 무덤 앞에는/무덤 모양 동그랗게 고봉으로 담은/흰밥 한 그릇이 놓여 있었다/지난해 흉년에 굶어죽은 이의/무덤이었다.(밥과 무덤)
밥은 인륜의 기초이며 사유()의 토대(소설가 김훈)이니 밥 앞에서 까불면 안 된다. 아무리 세상이 변하고 좋아져도 사람은 밥을 먹어야 살 수 있고 첨단 정보와 컴퓨터가 시대를 끌어간다 해도 누군가는 비바람치고 불볕 쬐는 논밭을 기며 하루 세 끼 밥을 길러 식탁에 올려야 한다(박노해). 세상에는 밥보다 더 거룩하고 본질적인 것들도 있겠지만 밥 없이 그것보다 더 큰 것들을 이룰 수는 없다.
대통령 선거에서 못 살겠다 갈아 보자는 외침이 나온 게 1956년이다. 1인당 국민소득 400달러였을 때다. 50여 년이 흘러 2만 달러가 되었는데 다시 못 살겠다 갈아 보자는 민심이 야당 후보를 압도적 표 차로 당선시켰다. 진보니 분배니 자주니 평등이니 하는 선() 말이 민중의 밥줄을 끊은 악()이 된 데 대한 엄중한 심판이었다. 결국 밥(경제)이다. 밥이 곧 하늘(민심)이요 시대정신이었다. 예수는 밥이 더러운 게 아니라 말이 더럽다고 했다. 말이 아닌 밥을 위한 정치가 열릴 건가.
허 문 명 논설위원 angelhuh@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