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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자고 너를 이곳에 불렀는지

Posted January. 09, 2008 0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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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고, 내 아들. 잘 살아 보자고 했는데. 차라리 없이 사는 건데.

경기 이천 화재참사가 발생한 다음날인 8일. 이천 시민회관에 마련된 희생자 합동분향소에 강순녀(59) 씨가 넋을 잃은 얼굴로 풀썩 주저앉았다.

주름진 얼굴은 핏기조차 없이 창백했고 목도 잔뜩 쉬어있었다.

강 씨는 7일 냉동창고를 날린 폭발로 남편과 아들 그리고 언니의 아들 부부 등 친인척 5명을 한꺼번에 잃었다.

이렇게 화마()는 코리안 드림을 가슴에 품었던 중국 동포 일가족의 꿈까지 한순간에 앗아갔다.

이 가족의 불행은 강 씨가 남편 박영호(60) 씨와 한국에 입국한 2001년부터 시작됐다. 특별한 재주가 없던 박 씨는 막노동을 하며 서울 생활을 근근이 꾸렸다. 일거리가 있다 없다를 반복하는 불안정한 생활이었지만 박 씨에게는 꿈이 있었다. 아들 용식(34) 씨였다.

기술자였던 용식 씨는 중국과 한국을 오가며 능력을 발휘하다 지난해 코리아 2000의 하청업체에 입사했다. 용식 씨는 아버지 박 씨와 친척들의 일자리까지 소개할 정도로 붙임성도 있고 회사에서 능력도 인정받았다.

용식 씨에게서 괜찮은 일자리가 있다는 말에 솔깃한 조동명(44) 씨와 박정애(44) 씨 부부도 지난해 9월 중국 길림성 장춘시에서 서울을 찾았다. 조 씨 부부는 용식 씨 이모의 아들내외였다. 이들 역시 공부 잘하는 아들 대학에 보내보자는 꿈을 안고 있었다. 조 씨는 한국에 들어오면서 친척 엄준용(51) 씨와 손동학(34) 씨도 함께 데리고 왔다.

아버지 박 씨도 용식 씨에게 함께 일하기를 청했다. 지난 연말 다니던 일터에서 쫓겨난 박 씨는 용식 씨의 입김 덕에 아들 직장에서 12월부터 함께 일할 수 있게 됐다. 용식 씨의 처남 김군(26) 씨도 뒤늦게 합류했다.

그렇게 용식 씨의 친인척 7명은 한 일터에서 일하며 꿈을 키우고 있었다.

행복도 잠시, 가족들이 가슴에 새긴 새해 희망이 채 피어나기도 전에 이들은 싸늘한 주검이 되고 말았다.

강 씨 가족의 비보를 듣고 한 걸음에 달려온 강 씨의 오빠 석문(68) 씨는 한 살배기 쌍둥이 남매를 남기고 간 용식이가 눈이나 감을 수 있겠냐며 눈시울을 붉혔다.

용식 씨는 7년 전 결혼한 부인과 슬하에 아이가 없어 불임시술 끝에 지난해 귀한 쌍둥이 남매를 얻은 터였다.

함께 숨진 김군 씨의 아버지 용진(57) 씨도 우리 애는 지난주에 중국에서 들어와 일을 시작한 지 닷새 밖에 안 됐다며 좋은 일자리를 얻었다고 그렇게 좋아하던 모습이 눈에 선한데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친척들의 부축을 받아 겨우 기운을 차리던 강 씨는 그 옆에서 하염없이 눈물만 흘렸다.

사고처럼 스친 단 한 번의 화재는 일순간에 중국 동포 일가족을 무너뜨렸다.



강혜승 fineda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