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동의안 처리를 놓고 팽팽하게 맞섰던 여야가 한발씩 물러나면서 숨고르기에 들어갔다.
국회 외교통상통일위원회 박진 위원장은 11일 오후 외통위 전체회의에서 한미 FTA 비준동의안은 여야 합의에 의해 상정하겠다며 일방적으로 밀어붙이지 않고 정상적이고 합리적인 의회 절차에 따라 논의가 진행되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나라당 홍준표 원내대표도 이날 오전 원내대책회의에서 여야 대결구도로 가지 않고 가능하면 야당과 협조해서 비준안을 처리하도록 노력할 것이라며 전날 밝힌 12일 공청회 직후 비준안 상정 방침을 사실상 철회했다.
이에 따라 여야는 17일로 예정된 외통위 간사단의 방미를 계획대로 추진하기로 했다. 비준안 상정 시기는 23일 방미단이 귀국한 다음 그 결과를 토대로 다시 논의해 정하기로 합의했다.
하지만 민주당은 12일 열리는 한미 FTA 관련 공청회는 비준안 상정을 전제로 열린다는 점을 들어 불참하기로 했다.
한나라당이 기존의 강경 방침에서 후퇴한 것은 비준안 문제로 각종 개혁입법안과 내년 예산안 처리까지 차질을 빚을 수 있다는 현실적 고민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홍 원내대표는 지금 법안과 예산안 처리 문제가 산적해 있는데 한미 FTA를 강행 처리하면 이번 정기국회가 어려워진다고 말했다.
또 비준안 강행 처리가 대외적으로 유리하지 않다는 판단도 깔린 것으로 보인다. 미국의 재협상 요구에 대비해서라도 여야 합의에 의한 비준안 처리라는 점을 내세워 협상력을 키워야 한다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한나라당의 양보가 독자 처리를 위한 명분 쌓기라는 관측도 있다.
한나라당의 한 당직자는 민주당이 방미 일정까지는 합의했다고 하지만 지금으로선 한미 FTA 반대 당론이 바뀔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봐야 한다며 결국 독자 처리로 갈 확률이 높은데 그전에 최대한 야권의 요구를 수용하며 명분을 쌓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고기정 koh@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