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과 민주당이 내년 예산안을 12일 처리한다는 데는 합의했지만 사회간접자본(SOC) 예산 규모와 각종 법안을 둘러싼 견해차는 좀처럼 좁혀지지 않고 있다. 한나라당은 이번 정기국회에서 우선 처리하기로 한 131개 법안 중 최소한 17개 법안은 통과시켜야 향후 국정을 계획대로 끌고 갈 수 있다고 본다. 반면 민주당은 이 중 상당수 법안이 우() 편향의 이념법안이므로 당명()을 걸고라도 저지에 나서겠다고 한다. 정세균 대표는 그중에서도 국가정보원법, 통신비밀보호법(휴대전화 감청), 정보통신망이용촉진법(사이버모욕죄 신설) 개정안 등을 반민주 악법()으로 규정하고 몸으로라도 막겠다고 했다.
국정원법 개정안은 21세기 새로운 안보위협에 적절히 대응하기 위해 국정원의 국내정보 수집 범위를 확대하자는 내용이다. 그러나 야당은 한 달 전 법안 발의 때부터 국정원의 정치사찰 기능을 부활시키겠다는 발상이라며 반대해왔다.
신종 산업스파이 등의 지능범죄를 막기 위해 휴대전화 감청을 양성화하자는 통신비밀보호법 개정안 역시 국가기관의 도청을 용이하게 할 수 있다는 이유로 논란을 빚었다. 감청 자체가 불법도 아니고, 운영도 국정원이나 수사기관이 직접 하는 게 아니라 이동통신업체를 경유토록 하자는 내용이지만 도청 공포를 완전히 불식하지는 못했다. 최진실 법으로 불리는 사이버모욕죄 신설 역시 위헌 논란이 많다.
이 밖에도 여야가 격돌할 소지가 있는 법안이 한두 개가 아니다. 그러나 지금은 경제와 민생 살리기에 총력을 기울여야 할 때다. 몇몇 쟁점 법안 때문에 정작 경제 살리기 법안 처리에 실기()한다면 교각살우()의 어리석음을 범하는 것과 같다.
마침 한나라당도 선별 처리할 수 있다는 뜻을 내비치고 있다. 정세균 지도부가 민주당 안에서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도록 명분을 줄 필요가 있다는 점에서 다행이다. 야당 지도부가 강경파에 휘둘리지 않아야 여야 간에도 타협이 가능하다. 여야는 쟁점 법안들은 잠시 덮어두고 경제민생법안부터 즉시 처리하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