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경제가 다 엉망이라 오히려 한국이 안전해요.
지난해 7월부터 서울 S외국어학원에서 원어민 강사로 일하고 있는 다시 드로트(24여미국) 씨.
15일 서울의 한 커피숍에서 친구인 메레디스 덴보(23여) 씨와 수다를 떨던 그는 한국에 영어와 관련된 일자리가 이렇게 많은 줄 몰랐다며 미국 경제 사정이 좋아질 때까지 미국에 송금할 생각이 없어 한국 계좌에 저금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최근 경영위기설이 흘러나오고 있는 미국 소재 은행보다 한국에 돈을 맡기는 편이 수익률과 안정성에서 모두 앞서기 때문이라는 것이 그의 설명이었다.
그의 말에 덴보 씨도 해외에 영어를 가르치러 가는 일은 미국에서 정말 인기가 좋다면서 원래 일본을 생각했었는데 한국은 출입국 항공료도 제공해 주고 대우도 더 좋아서 한국을 선택하게 됐다고 맞장구쳤다.
고등학교 동창인 드로트 씨와 덴보 씨는 대학 졸업 후 각자 한국 출신의 대학 동기들로부터 한국행을 추천받아 한국에 와서 다시 만났다. 지금은 같은 학원에서 일한다.
서울 W외국어학원에서 일하는 샘 위김턴(30호주) 씨도 호주 달러 가치가 미국 달러 가치의 50%밖에 되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한국에 있는 것이 행복하고 계속 한국에 머물 계획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환율이 크게 오르면서 학교와 학원에서는 원어민 강사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처럼 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컸다. 하지만 이러한 우려는 기우()였다. 경제불황으로 미국과 캐나다 등에서도 일자리가 없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3년 동안 사설 학원과 학교에서 영어 원어민 보조 교사로 일한 유진 캘러웨이(32미국) 씨는 지난해 12월 계약이 끝나면 미국으로 돌아갈 예정이었다. 그러나 그는 지난해 말 마음을 바꿔 연장 계약서에 서명했다.
캘러웨이 씨는 지난해 환율 급등으로 소득이 1520% 줄었지만 미국에 간다고 당장 일자리가 생기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좀 더 일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학교에서 일하는 영어 원어민 보조 교사는 원 단위로 계약을 한다.
서울시교육청의 경우 1996년 원어민 교사를 첫 도입할 당시에는 달러를 기준으로 계약을 했지만 외환위기를 거치면서 원 단위로 수정했다.
한 원어민 교사는 매일 환율에 대해 체크하고 환차손을 따지는 친구들도 있다면서 하지만 월급을 어차피 한국에서 생활비로 쓰면 큰 차이가 없다고 생각하는 이가 많다고 전했다.
원어민 교사가 되기 위해 한국행을 희망하는 지원자도 늘고 있다.
원어민 교사 선발 관리를 위탁 및 수행하는 국립국제교류진흥원 관계자도 환율 상승세가 한풀 꺾인 데다 한국을 선호하는 외국인이 많아 원어민 교사 수급에 어려움이 없다며 올 1학기 때 588명을 선발할 예정인데 현재 900명 이상이 지원했다고 말했다.
140명 안팎을 선발할 예정인 서울시교육청에도 두 배 이상인 400여 명의 희망자가 몰렸다.
하지만 국내 경기침체가 계속된다면 상황은 달라질 수 있다.
2003년부터 원어민 강사로 인한 닐 초더리(32미국) 씨는 일본 엔화가 강세라 일본으로 이직을 생각하는 강사가 늘기 시작했다며 근무 환경은 한국이 더 낫지만 신용카드 빚이나 학자금 대출 등을 생각하면 일본이 매력적인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전남도교육청 관계자도 예전에는 국내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는 원어민 교사가 많았지만 올해는 일본 홍콩 등으로 옮겨간 사례가 많다고 전했다.
황규인 kin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