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이라크를 침공할 때 미국 정부는 이라크에 대량살상무기(WMD)가 있다고 주장했다. 보수성향의 미국인 34%가 이를 사실이라고 믿었다. 2004년 이라크조사단이 이는 사실이 아니라는 듀얼포 보고서를 발표했다. 그런데도 이라크에 WMD가 있었다고 믿는 보수층이 64%로 늘었다. A라는 정보가 한번 입력되면 나중에 A가 아니라는 사실이 밝혀져도 A만 더 기억에 남기 때문이다. 의도적으로 왜곡된 거짓정보는 그래서 더 무섭다.
미국산 쇠고기 관련 MBC PD수첩의 방송대본이 제작 당일 수정된 사실이 드러났다. 서울중앙지검이 제작진의 e메일 압수수색에서 대본 원본을 발견해 밝혀낸 일이다. 번역 초고와 대본에는 크로이츠펠트야코프병(CJD)으로 숨진 미국여성 아레사 빈슨의 어머니가 딸의 사인은 CJD라고 말한 부분이 일관되게 CJD로 표기됐다. 그런데 최종대본엔 돌연 인간광우병(vCJD)으로 7, 8곳이 수정된 것이다. 검찰은 제작진이 실수한 것이 아니라 일부러 왜곡했다고 본다. 미국산 쇠고기를 먹으면 인간광우병에 걸려 죽는다고 인식시키려는 제작 의도에 맞추어 그런 왜곡을 저질렀을 것이라고 검찰은 판단하고 있다.
이 방송을 보고 적잖은 사람들이 미국 소=광우병라며 거리로 뛰쳐나왔다. 여중생들은 15년밖에 못 살았다며 울먹였다. 그 후 미국산 쇠고기와 광우병에 대한 과학적 진실이 보도됐는데도 아직도 꼴통 좌파는 PD수첩의 주장을 믿으려 든다. PD수첩은 정책비판이라는 언론본연의 기능을 했을 뿐인데 죄인으로 몰고 간다고 되레 큰소리다.
PD수첩은 정책비판을 한 게 아니다. 사실을 멋대로 왜곡하며 대()국민 사기극을 벌인 것이다. 단순 오역이나 실수도 아니다. 그랬다면 진작 사과하고 자체정화에 나서야 옳다. 나라를 혼란에 빠뜨리고 국기()를 흔들었으면 석고대죄를 해도 모자랄 판이다. 의도적 사실 왜곡이 언론자유라도 되는 양 언론탄압의 순교자인 척 하는 모습이 역겹다. 엄청난 사회적 파장과 국가적 손실을 야기한 희대의 왜곡 방송을 단지 정운천 전 농림수산식품부 장관 등의 고소에 따른 명예훼손 사건으로 축소하는 것도 과연 타당한가.
김 순 덕 논설위원 yur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