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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유혹 극복한 이우재판사 이래서 살아야한다

자살유혹 극복한 이우재판사 이래서 살아야한다

Posted May. 06, 2009 0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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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동부지방법원 이우재 부장판사(44)는 안방 욕실에 있는 샤워기를 볼 때면 종종 웃음이 나온다. 3년 전 이 판사는 샤워기를 이용해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다 실패했다. 생사의 경계를 갈라놓을 뻔했던 샤워기에 얽힌 끔찍한 기억이 이젠 추억이 됐다.

당시 이 판사는 우울증과 불면증을 심하게 앓았다. 주식에 투자한 돈을 고스란히 날렸고, 부부싸움도 잦았다. 하루하루 고독한 결정을 내려야 하는 업무 스트레스까지 겹치면서 어느 날부턴가 잠을 이루지 못했다.

서울대 법대를 졸업하고 사법시험(30회)에 합격한 뒤 사법연수원 성적이 최상위권이어서 서울중앙지법 판사로 임용될 때까지 탄탄대로를 걸었던 이 판사는 갑자기 닥친 시련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왜 나한테 이런 일이라는 생각만 꼬리를 물었고 틈만 나면 어떻게 죽을지를 고민했다.

2006년 부처님오신날, 그는 부부싸움 끝에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욕실 샤워호스로 목을 감았다. 숨구멍이 컥 하며 막히는 순간 호스가 벽에서 뚝 떨어졌다. 욕실 바닥에 쓰러진 그는 눈물을 흘렸다.

호스가 빠지면서 찬물이 콸콸콸 쏟아지는데 정신이 번쩍 들더군요. 주체할 수 없는 충동이 몰려와 목을 맸지만 내가 죽지 않았다는 게 기쁘기도 하고 또 내 신세가 너무 처량하기도 해서.

하지만 그게 끝이 아니었다. 우울증은 끈질기게 그를 괴롭혔다. 며칠 뒤인 2006년 6월 어느 날 이 판사는 수면제 50알과 물 한잔을 준비했다. 유서도 남겼다. 결행을 앞두고 잠시 침대에 누웠다 잠이 들었다.

꿈속에 2년 전 돌아가신 어머니가 나타나 제 수의를 벗기는 거예요. 그때 나타난 어머니가 바로 저였던 것 같아요. 겉으론 죽을 준비를 하지만 속으론 그만큼 살고 싶었던 거죠.

잠에서 깨어난 다음 날, 그는 한번 살아보자는 생각으로 병가를 내고 충남 계룡산의 한 사찰로 들어갔다. 산사에서도 우울증은 나아지지 않았다. 아무 의욕도 없이 벽만 바라보면서 하루를 보냈다. 수면제를 먹어야 잠이 들었다. 3주쯤 지난 어느 날, 부인이 초등학생 딸과 유치원생 아들을 데리고 절을 찾아왔다. 하루를 함께 보내고 식구들과 작별할 무렵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부인이 어서 들어가라고 해 절간에 들어왔다.

30분쯤 지났을까요. 방에 불도 켜지 않고 앉아 있다 창밖을 내다보는데 부인과 애들이 그대로 비를 맞고 서 있는 겁니다. 순간 뭔가가 북받쳐 올라오면서 눈물이 왈칵 쏟아지더군요.

이 판사는 2시간 동안 주저앉아 울었다. 주변 사람에 대한 분노, 자신의 처지에 대한 억울함이 눈물에 섞여 나왔다. 울음소리를 듣고 건너온 옆방 스님은 당신을 힘들게 하는 사람들의 마음속에 한번 들어가 보라고 했다.

그렇게 원망스럽던 사람들이 한 명씩 떠오르는데 용서는 안 되지만 머릿속에서 대화는 되더군요. 그렇게 조금씩 그들을 이해하게 되면서 가슴속 독이 녹아 내렸습니다.

그날 이후 그의 마음속에는 눈물은 인생을 치유한다는 금언이 자리 잡았다. 마음을 잘 추스른 이 판사는 4개월 만인 2006년 10월 산사에서 내려왔고 2007년 2월 업무에 복귀했다.

제 병을 악화시킨 건 결국 저 자신이더군요. 내가 어떤 사람인데 이런 불행이 닥치는 거야라는 자의식이 제 상황을 겸허히 받아들이는 데 큰 방해가 됐어요. 나의 약함, 나의 상처를 인정하고 눈물을 한 바가지 쏟고 나면 마음의 응어리도 함께 빠져나갑니다.

최근 연예인들의 자살 소식이 잇따르고 동반 자살도 급증하는 것을 보면서 이 판사는 안타까운 심경을 말했다.

죽고 싶을 정도로 힘든 일도 있겠지만 그때 인생의 바닥을 치고 나면 돌이켜봤을 때 별일이 아닐 수 있어요.

요즘 이 판사의 말투는 빠르고 톤이 높다. 휴대전화에는 노래방 18번 제목들이 차곡차곡 저장돼 있다. 중년의 나이에 슈퍼주니어의 Sorry, Sorry를 즐겨 부르는 유쾌한 사람이었다. 비결은 간단했다.

문제를 문제 삼지 않으면 더는 문제가 안 되죠. 그렇지 않겠어요?



신광영 ne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