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일 오전 10시경, 그때까지만 해도 언론에서 차기 검찰총장으로 가장 유력하게 거론되던 권재진 서울고검장(사시 20회사법연수원 10기)은 청와대 민정라인의 한 관계자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곧 검찰총장 인사가 발표된다고 하니 준비를 해야 될 것 같다는 취지의 내용이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 전화를 받고 매사 신중하기로 정평이 난 권 고검장도 자신의 검찰총장 내정 사실을 확신했던 듯하다.
실제 권 고검장과 가까운 한 후배 검사는 이날 권 고검장의 지시를 받고 검찰총장 내정에 따른 그의 언론 배포용 프로필 작성에 착수하기도 했다는 후문이다.
비슷한 시각 법무부와 검찰 주변에도 권 고검장의 총장 내정 발표설이 돌았다.
한 검찰 중견 간부의 전언. 일요일 오전 다른 검사를 포함해 몇 명의 인사와 모임이 있어 만나고 있었다. 그중엔 청와대 인사도 한 명 있었다. 오전 10시가 조금 넘었을 때 그 청와대 인사가 민정라인의 누군가로부터 전화를 받고는 검찰총장 권재진이라고 해 그런 줄 알았다. 법무부와 검찰의 일부 간부는 권 고검장에게 축하 전화를 걸기도 했다고 한다.
낮 12시를 넘기며 전혀 의외의 인물이 될 것이라는 얘기가 조금씩 흘러나오긴 했지만 권 고검장이 내정될 것이라는 데 의문을 품은 사람은 거의 없었다. 하지만 오후 1시 50분경 청와대는 검찰총장에 전임 임채진 총장보다 사법연수원 3기수 아래이고 권 고검장보다도 2기수 아래인 사시 22회의 천성관 서울지검장(검찰총장 내정자)이 내정됐다는 사실을 언론에 전격 공개했다. 검찰 고위 간부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청와대에서 혼란스러운 상황이 있었던 것 같다는 얘기만 반복했다.
검찰총장 인선을 둘러싸고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청와대 관계자들의 얘기를 종합하면 당초 민정라인이 권 고검장을 검찰총장 1순위로 올린 것은 분명한 듯하다.
다만 누가 천 내정자를 추천했는지, 이 대통령이 권 고검장을 임명하려다가 발표 당일 갑자기 천 내정자로 바꾼 것인지, 그전에 이미 천 내정자를 시키기로 마음먹고 있었던 것인지 등의 인선 과정은 베일에 가려 있다. 더욱이 권 고검장이 당일 오전 청와대 관계자의 전화를 받고 언론용 프로필 작업을 지시한 것으로 전해져 이 같은 궁금증을 증폭시키고 있다.
복기해보면 천성관 카드가 느닷없이 나온 것은 아니라는 분석도 있다. 청와대의 한 핵심 인사는 이미 일주일 전부터 천성관 얘기가 나왔다고 했다. 또 6월 12일 권 고검장과 문성우 대검 차장(사시 21회) 등과 함께 사시 22회 중에서는 유일하게 천 내정자에게 인사검증동의서를 보냈고 사인을 받았다는 것이다. 여권의 한 핵심 인사는 지난 금요일 오후에 이미 권 고검장과 천 내정자 두 명으로 압축된 상태였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최종 결심에는 권 고검장이 대구 출신이라는 점, 김경한 법무부 장관의 고등학교 후배라는 점, 천 내정자가 MBC PD수첩과 용산 참사 사건을 잘 처리했다는 점, 세대교체를 통해 검찰 조직을 일신()할 수 있다는 점, 충청권에 대한 배려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는 것이다.
한편 권 고검장과 김준규 대전고검장(사시 21회)은 22일 차기 검찰총장에 내정된 천 내정자에게 부담을 주지 않겠다며 법무부에 사의를 표명했다.
정용관 조수진 yongari@donga.com jin061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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