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영국은 잊어라.
대영제국 시절 해가 지지 않던 나라로 불렸던 영국. 제1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제국이 붕괴된 이후에도 영국은 수십 년간 세계무대에서 작은 강대국으로 군림해왔다. 이 모두가 금융을 비롯한 앞선 경제력과 문화적 영향력, 핵을 보유한 막강한 군사력, 최강대국인 미국과의 끈끈한 유대관계가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었다. 세계 분쟁에 개입하고 각종 국제 문제에 목소리를 내는 등 옛 제국의 면모를 부분적으로 유지해왔다.
하지만 글로벌 경제위기가 영국의 성장을 견인해온 금융산업을 강타하면서 상황이 급변했다. 소매물가가 50년 만에 처음으로 하락하는 등 디플레이션 우려가 가시화되고 있고 실업수당 수령자 수도 1997년 이후 처음으로 200만 명을 돌파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현재 국내총생산(GDP) 대비 68.6% 수준인 영국의 공공부채가 5년 후에는 100%에 근접할 것이라고 경고하고 나섰다.
시사주간지 뉴스위크 최근호(8월 17일자)는 위대한 영국은 잊어라라는 특집기사에서 최근 글로벌 경제위기로 영국의 대외 영향력이 급격하게 위축되고 있다며 대영제국 시절 한 번도 지지 않았던 태양이 영국의 야심에 기다란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 잡지는 영국은 이제 세계무대에서의 역할을 재고할 때가 됐다며 아마도 작은 영국에 만족해야 할지 모른다고 언급했다.
현대사에서 볼 때 영국은 세계무대에서 자신의 국력을 뛰어넘는 과도한 역할을 추구해온 거의 유일한 국가였다. 냉전시대 영국의 마거릿 대처 총리는 미국의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을 도와 소련의 붕괴를 도모했고 자본주의 확산을 꾀했다. 1997년부터 10년간 재임한 토니 블레어 총리는 코소보 아프가니스탄 이라크 등 3개 지역에서 전쟁을 수행했다. 군사적 개입 건수가 세계경찰을 자처하는 미국 다음으로 많았다. 특히 블레어 총리 시절 마치 영국이 미국의 51번째 주인 것처럼 미국이 주도하는 여러 전쟁에 참전해 윈스턴 처칠 총리 이후 영국이 가지지 못했던 국제적 영향력을 일시적으로 되찾기도 했다.
그러나 영국을 집중 강타한 경제위기로 인해 국방부와 외교부 예산이 대폭 삭감되면서 영국이 이러한 역할을 더는 수행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뉴스위크는 지적했다. 대규모 예산 삭감은 하드 파워(군사력, 경제력 따위를 앞세워 상대방의 행동을 바꾸게 하거나 저지할 수 있는 힘)와 소프트 파워(정보 과학이나 문화예술 등이 행사하는 영향력) 모두를 약화시키기 때문. 강대국의 상징인 핵전력 역시 예산 부족으로 인해 핵잠수함용 첨단 미사일 시스템 도입이 지연되는 등 핵 억지력 유지에 애를 먹고 있다. 중국 인도 등 신흥 경제대국이 급부상하고 있고 미국이 새로운 강대국들과 협력을 강화하려는 움직임도 영국이 현재 누리고 있는 국제적 위상을 유지하기 어렵게 만들고 있다.
고든 브라운 총리가 물러나고 야당인 보수당이 집권해도 추락하는 현 추세를 뒤집기는 쉽지 않다. 보수당 측은 최근 의회 연설에서 영국이 과거처럼 세계 문제에 영향력을 발휘하기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고 문제의 심각성을 지적했다. 공공정책연구소의 이언 키어런 박사는 영국은 상대적으로 부유하고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이지만 저무는 나라라고 말했다.
성동기 espri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