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대()이란 제재로 국내 기업들의 피해가 눈 덩이처럼 불어나고 있지만 정부는 아직 뚜렷한 활로를 찾지 못하고 있다. 미국과 유럽연합(EU)을 필두로 세계 각국이 속속 이란 제재에 동참할 움직임을 보이면서 이란과의 금융거래 통로가 갈수록 좁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금융당국은 최근 외환은행 등 시중은행들에 미국의 이란제재를 위반하지 않으면서 이란과의 수출입을 위한 금융거래를 지속할 수 있는 방안을 찾도록 요청했다. 이란 멜라트은행 서울지점이 미국의 제재대상에 오르면서 이 은행을 통한 무역거래가 사실상 전면 중단된 데 따른 후속 조치다. 연간 40억 달러에 이르는 한국의 이란 수출입 가운데 3분의 2가량이 멜라트은행 서울지점을 통해 거래되고 있다.
이에 따라 외환은행을 비롯한 시중은행들은 지난주 아랍에미리트(UAE)와 사우디아라비아 등 중동 지역은 물론 중국 금융회사에까지 수출입 금융거래 가능성을 문의했으나 긍정적인 답을 얻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이란과의 무역거래를 지속하기 위해선 금융거래처를 확보하는 것이 필수라며 세계 곳곳의 금융기관에 국내 기업들의 무역금융거래가 가능한지 문의하고 있지만 아직 마땅한 대안을 찾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란과의 금융거래 통로가 막히게 된 것은 미국의 주도 아래 주요 국가들이 이란제재에 나서고 있기 때문이다. 이란과의 수출입 거래를 위해선 달러와 유로화 등 국제결제통화를 사용해야 하지만 미국과 유럽 금융회사들이 이란과의 금융거래를 단절하면서 이들 통화를 이용한 거래가 불가능해졌다. 일본과 UAE 역시 조만간 이란 제재에 동참할 움직임을 보이면서 그동안 조금씩 결제통화로 사용되던 엔화와 UAE 통화 역시 거래가 끊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이에 따라 국내 기업들의 피해는 커지고 있다. 현재 이란과 교역 중인 한국 기업은 2000여 개에 이른다. 특히 이들 대부분이 자금력이 약한 중소기업이어서 상당수가 도산 위기에 처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실제 8일 중소기업중앙회가 76개 중소기업을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이란과의 수출입 거래를 하는 중소기업의 56%가 피해를 본 것으로 나타났다. 응답기업의 31.5%는 아예 수출거래 자체가 중단됐으며 앞으로 피해가 예상된다고 답한 기업도 34.7%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중기중앙회 관계자는 제3국을 통한 우회수출이나 긴급경영자금 지원 등 이란과 거래하는 중소기업의 피해를 줄이기 위한 대책이 절실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문병기 박승헌 weappon@donga.com hpark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