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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유시민의 인기와 앤티

Posted April. 06, 2011 1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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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전 대통령의 정치적 경호실장으로 통했던 유시민 씨(현 국민참여당 대표)는 늘 논란을 몰고 다닌다. 2003년 4월 경기 고양 덕양갑 재선거 연합공천을 놓고 개혁당 후보였던 유 씨는 집권 민주당과 날카롭게 맞섰다. 민주당 일각에서 집권당이 후보를 못 낸다는 게 말이 되느냐며 반발했지만 당시 노 대통령은 물밑에서 유 씨가 당시 여권의 연합공천 후보가 되도록 지원했다. 공천권을 따낸 유 씨는 여유 있게 당선됐다.

같은 해 노 대통령 주도로 창당된 열린우리당에 입당한 유 씨는 개혁파 진영을 대표하며 당권파와 충돌했다. 이른바 빽바지(개혁파)와 난닝구(당권파) 논쟁도 그때 불거졌다. 빽바지는 유 씨가 첫 등원() 때 흰 바지를 입었던 데서 따온 말이다. 난닝구는 2003년 9월 러닝셔츠 차림의 50대 남성이 열린우리당 창당에 반대하고 민주당 사수를 외친데서 유래됐다. 기간당원제 문제, 민주당과의 재통합 문제를 놓고 양측의 감정이 격화된 가운데 유 씨는 옳은 말을 싸가지 없이 한다는 소리를 들었다.

재임 시절 노 대통령은 유 씨를 각별히 아꼈다. 노 대통령과 유 씨는 영남 지역주의에 안주해 기득권을 챙기는 한나라당도 싫어했지만 열린우리당 당권파도 호남 지역주의에 빠져있다고 생각했다. 2006년 초 열린우리당 내 상당수 의원들이 유시민 보건복지부 장관 카드에 반대했을 때도 노 대통령은 인사를 강행했다. 유 씨가 2009년 국민참여당을 창당하자 적지 않은 친노() 인사들도 그를 분파주의자라고 비난했다.

그런 유 씨가 야권 대선후보 중 지지율 1위를 지키고 있다. 이를 바라보는 민주당의 속내가 복잡하다. 지난해 경기도지사 선거과정에서 확인됐듯이 민주당 핵심 지지층의 유 씨에 대한 반감도 여전하다. 그러나 젊은 층의 지지세는 만만찮다. 427 김해을 재선거의 야권후보 단일화 협상이 성사되지 않은 책임에 대해 자신에게 화살이 쏟아졌지만 유 씨는 이대로 가면 내년 총선, 대선 야권연대도 어렵다고 으름장을 놓고 있다. 지지율이 정체상태인 민주당 손학규 대표가 분당을 보궐선거에 뛰어든 것도 이런 판을 흔들어야 한다는 절박감 때문이 아닐까 싶다.

정 연 욱 논설위원 jyw11@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