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일 중국을 통해 찾은 백두산은 눈 천지였다. 백두산에는 9월 중순이면 벌써 첫눈이 내린다. 인근 옌지() 지안()에서 단풍의 절정인 감상한 뒤 곧바로 백두산에 오르면 설국()이 펼쳐져 자연의 신비가 놀랍다. 해발 2750m에 있는 천지()로 가는 등산로는 완전 폐쇄됐다. 천지의 물이 만들어 낸 높이 67m 짜리 장백폭포 언저리 까지 수없이 미끄러지면서 천신만고 끝에 도달할 수 있었다.
국토의 70%가 산인 한국은 태곳적부터 산과 친했다. 반도의 북측에 터를 잡았던 고구려가 첫 수도로 정한 곳은 해발 800m에 위치한 졸본성였다. 이번 여행에서 이 산성 주변에는 다행히도 눈이 내리지 않았다. 산성까지 999개의 계단을 밟아 오르자니 등산도 이만저만한 등산이 아니었다. 100m의 직벽으로 둘러싸인 이 천혜의 요새로 오르는 네 갈래의 길을 오르고 올랐을 우리 조상들은 모름지기 산 오르기의 달인들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땀을 닦고 바라본 졸본성 정상에는 고구려를 상징하는 전설의 새 삼족오() 깃발이 펄럭였다.
산사나이 박영석(48) 씨가 히말라야 안나푸르나를 등정하던 중 연락이 끊겼다. 하산하면서 마지막으로 교신했던 내용이 두 차례만 하강하면 다 내려온다는 말이어서 더욱 안타깝다. 그는 2005년 히말라야 14좌, 남북극 및 에베레스트, 7대륙 최고봉을 모두 정복해 세계 최초로 산악 그랜드슬램을 달성했다. 영하 4060를 오가는 극한의 추위 속에서 100kg이 넘는 무게를 짊어지고 두 달 가량을 견뎌 북극점을 밟기도 했다. 그는 도전하는 자가 세상의 주인이라며 1%의 가능성만 있어도 절대 포기하지 않는다는 말을 자주했다.
에베레스트에서 실족해 이틀간 의식을 잃었다가 깨어난 그는 첫마디로 기다려라. 다시 간다고 말했다. 혈육 같은 후배와 같이 에베레스트를 정복한다는 일념으로 다시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종아리 근육이 터져 나가고 산소통 안의 산소가 다 떨어져도 신들의 세상을 밟는 일을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나들기를 밥 먹듯 했던 그가 히말라야의 눈 속에 갇혀 있다. 한계를 넘어서기 위해 내 자신에게 도전했다고 한 박 씨의 무사 귀환을 간절히 소망한다. 백두산의 후예들은 쉽게 포기하지 않는다.
하 태 원 논설위원 triplets@donga.com